최근 기업의 한 연구원이 떠나며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혁신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가능한데 그런 연구 환경이 아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비판적 토론과 창의적 아이디어가 사라진 연구현장을 연구원들이 떠나는 현실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 세계는 에너지 및 자원고갈,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감이 고조되는 한편 지식기반사회의 진전으로 이제 기술 지식 등 무형자산이 성장의 핵심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개방화, 정보화 확산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 국에서 과학기술은 세계적 위기 극복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엔진으로 인식되며 국가적 역량이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의 경우 과학경쟁력 세계 4위, SCI 논문수 세계 11위 등 외형적 성과는 크게 증가하였으나, 논문의 영향력, 세계적 과학자의 육성, 연구소의 국제경쟁력 등 질적 수준은 여전히 미흡하다. 과거 연구개발 투자는 자원이 한정된 후진국형으로 선택과 집중, 응용 연구 중심의 추격형 투자에 머물렀으나, 이제부터는 풀뿌리형, 기초연구, 창의적 모험연구 중심의 선진형 투자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 EU 등 선진 강국은 기초연구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며 혁신적 기초연구지원 강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 주도로 기초연구 진흥을 위해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기초원천 분야의 투자확대를 추진해왔으나, 최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출범, 과학벨트와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 등 환경변화에 따라 기초연구 전략 및 정책의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가적 차원의 기초 진흥을 위한 미래전략 수립을 해나가려면 우선 기초연구 개념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지식자원을 창출할 수 있는 기초연구와 우수한 인재자원의 확보이며 "기초연구는 더 이상 공공재만이 아니다"라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즉 여러 나라에서 기초연구가 점점 더 고유자원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기초 분야의 지적 인프라 구축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우수한 기초 연구인력의 확보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연구원들이 기업과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대학으로, 외국으로, 또 다른 직종으로 연구개발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은 심각한 국가적 손실이다. 연구원 이직의 가장 큰 원인은 신분 불안과 열악한 처우라고 한다. 특히 출연연의 경우 비정규직 연구원 비율이 지나치게 높고 이들은 근속기간이 짧아 신분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사회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러한 문제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어 과학기술자의 미래를 꿈꾸는 차세대 젊은 인재들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젊고 우수한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주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시급하다.
작년 말 월스트리트저널은 G20 정상회의 직전에 'The miracle is over. Now what?'이란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은 이제 불편한 진실을 맞닥뜨려야 한다"고 썼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해준 성공적인 경제 전략이 이제 한계에 이르렀고, 그 대안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과연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연구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의 절실한 고민을 담은 혁신과 변화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 새로운 기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김승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아태이론물리센터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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