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택(古宅)의 빈 방, 책보를 허리에 두르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 부산의 한 고즈넉한 사찰의 문살, 안동의 기와집 담벼락에 줄 지어 놓인 장독들…. 우리네 삶의 풍경이었으되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흑백 사진 속 풍경들이 나지막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산과 들, 고택, 돌담, 장독, 기와, 장승 등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기록해온 사진작가 주명덕(71)의 'My Motherland(나의 조국)-비록 아무것도 없을지라도'전이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9월 25일까지 열린다. 근대화로 사라져간 이 땅의 모습과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후대에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 전시다. 전시장에는 약 130장의 흑백사진이 내걸렸다.
작가는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설악산의 눈 내린 풍경을 찍었는데 참 아름다웠다"며 "그 때부터 전국을 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찍었는데, 이제 다시 가도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사진으로나마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찍은 것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1980년 강릉의 한 고택에서 찍은 소나무는 부연 빛이 스며든 창호지 문의 열린 공간을 액자 삼아 자리잡았다. 서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올려다본 것이 아닌 방 안에 앉아서 풍경을 감상하듯 찍은 것이다. 그의 사진에는 이처럼 옛 사람들이 전통을 지키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가 여전히 필름으로 찍은 사진을 직접 손으로 인화하고 흑백사진만을 고수하는 것도 이 같은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 알리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2008년 '도시정경', 2009년 '잃어버린 풍경'에 이어 열리는 '주명덕 프로젝트'의 마지막 전시로, 1970~80년대 작품을 주로 다뤘다. 전시장에는 66년 혼혈아를 찍은 그의 첫 개인전 '홀트씨 고아원' 작품도 모니터로 상영된다. (02)720-0667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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