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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옥선언' 빈말인가… 서촌은 공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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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옥선언' 빈말인가… 서촌은 공사판

입력
2011.08.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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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서쪽 마을 서촌(西村)이 요즘 시끄럽다. 서촌은 서울 종로구의 효자ㆍ필운ㆍ누하 등 15개 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동쪽 동네. 개량 한옥과 일제강점기에 지은 일본식 가옥 등이 어우러져 20세기 초 서울의 모습을 상당부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서촌을 보존한다며 서울시가 '경복궁 서측 지구단위계획'을 발표한 2010년 4월 이후 오히려 한옥이 헐리고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필운동 87번지의 70여 년 된 한옥이 사라졌다. 4층짜리 빌라를 짓기 위해서다. 누하동 236번지에는 이미 7층짜리 공동주택이 세워 졌고, 222-3번지에서는 6층짜리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 한옥 주민들은 이런 변화를 걱정하고 있다. 3년째 서촌에 살고 있는 김한울(32)씨는 "저층 한옥들 사이에 괴물같이 높은 건물이 우뚝 솟아 흉물스럽다. 인왕산의 스카이라인이 다 보이는 게 이곳 한옥살이의 장점이었는데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경관을 해칠 수밖에 없다"고 성토했다.

서촌 토박이 김진숙(63)씨는 "한옥을 살리자고 지구단위계획까지 세워 놓고 빌딩을 짓도록 허락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정책이라면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한옥을 헐고 높은 건물을 짓는 데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문제가 되고 있는 누하동 236번지와 필운동 87번지는 일반건축물을 지어도 되는 구역이고, 누하동 222-3번지는 한옥권장지역이라 반드시 한옥을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구단위계획에 따르면 '한옥지정구역' 안의 신축 건물에 한해서만 한옥을 짓도록 돼 있다. 서촌에 일반 건물이 들어설 빈틈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재산권 침해 논란이 있어 다짜고짜 한옥 보존만 주장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이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한옥지정구역 이외의 곳에 현대식 건물을 못 짓게 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5년째 서촌에 산다는 정용호(65)씨는 "옛날 강남이 콩밭일 때 서촌은 부자동네였는데, 그 후 강남이 눈부시게 발전해도 여긴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이 정체돼 있다"며 보존보다는 개발을 지지했다. 주민 간에도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린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옥을 보존하고 난개발을 막기 위해 뜻을 모은 서촌 주민 30여명이 최근 '서촌주거공간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50) 서울대 교수는 "2008년 오세훈 시장이 한옥을 보존하고 새로 지을 때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면서 '서울 한옥선언'을 했는데 공허한 약속에 그치고 말았다. 지금 서촌 상황을 보면 전혀 정책적 지원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파우저 교수는 "사대부 한옥 위주인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선시대 중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로, 아직까지 생활과 밀착된 한옥이 많다"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서촌의 현재 모습을 꼭 지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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