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르면 20일 러시아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2002년 8월 이후 9년 만에 개최되는 것으로, 북∙러의 관계개선은 한반도 정세의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방러 가능성은 지난 6월 말부터 러시아와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양국 정상이 7월 초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또는 하산에서 만날 것이란 보도까지 있었다. 당시 러시아 방문이 무산되자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부상하기도 했다. 정보 당국은 최근 김 위원장이 함흥 인근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낸 사실에 주목, 러시아 국경 쪽으로의 이동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다소 소원했던 북∙러의 관계개선 가능성은 양측의 이해관계 때문에 조만간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해 놓은 북한으로선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남한과 국제사회의 전방위적인 경제 제재를 받아온 북한은 탈출구를 마련하는 한편 김정은으로의 권력세습에 대한 러시아의 지지도 필요하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렛대를 마련할 수 있다. 또 북미 관계 개선을 앞당기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러시아로선 북한과의 거리를 좁혀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과 미국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남북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부설은 물론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 동해 진출을 위한 나선지구 지분 확보 문제 등에서 북한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 66주년을 맞아 김 위원장에게 보낸 축전에서 "가스∙에너지∙철도 건설 분야에서 러시아와 남북한 간 3자 계획 등 모든 방향에서 대북 협조를 확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도 "양국 관계가 두 나라 인민의 공동이익에 맞게 발전되리라고 믿는다"고 화답했다.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경제 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값싼 가스를 활용하고 수수료를 챙길 수 있으며, 동북아의 물류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 벌목공이나 건설노동자의 극동지역 진출확대, 대(對) 러시아 채무 완화 등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북한은 중국 일변도로 가지 않고 균형과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것은 물론 김정은 후계구도 지지를 기대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양측의 이해 조정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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