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63)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의 보수 성향은 그가 대법관으로 있으면서 맡았던 사건의 판결문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속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사법부의 특성을 감안한다 해도, 기존 사회질서나 체제에 순응하는 쪽으로 법률을 해석하고 판결했음이 뚜렷하다는 말이다.
19일 한국일보가 양 후보자의 대법관 재임 시절(2005년 2월~2011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주요 사건 판결문들을 분석한 결과, 그의 보수ㆍ안정 지향적 태도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난해 7월 선고된 남북공동실천연대 사건이다. 당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실천연대는 이적단체"라는 것이었는데, 박시환 대법관은 김지형ㆍ이홍훈ㆍ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반대 의견을 낸 데 이어, 별개의견을 통해선 국가보안법의 위헌성까지 주장했다.
다수 의견이었던 양 후보자는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이미 국보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고, 국회도 이를 존치시킨 상황에서 또 다시 국보법의 위헌론을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보충 의견으로 반박했다. 사상의 자유보다는 안보 중시 입장을 내보인 것이다.
친기업적 성향도 엿보인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촉발시킨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판결에서 양 후보자는 "신주 발행을 통해 필요한 회사 자금을 조달한 것이므로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제3자 배정방식 발행이냐, 주주 배정방식 발행이냐를 유ㆍ무죄의 기준으로 삼아 무죄로 판단했던 다수 의견과는 다른 논리였으나, 어차피 결론은 같았다. 특히, 양 후보자의 견해대로라면 앞으로 재벌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는 막을 수단이 거의 없다고 볼 여지도 있다.
'상지대 사태' 판결문에선 공익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있다. 양 후보자는 보충 의견을 통해 "사학 제도에 교육의 공공성이 강조되긴 하나, 국가권력이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 사학의 자율성에 대한 중대한 위험 요소"라고 밝혔다. 또 "임시이사에 정식이사 선임권을 주게 되면 사학의 운영 주체가 변경돼 재산권 침해도 우려된다"고도 했다.
엄격한 위계질서를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강의석 사건'에서 대법원은 "종교교육을 위해 설립된 학교에서도 종교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며 강의석씨의 손을 들어줬으나, 양 후보자는 "교사에 대한 강씨의 불손한 언행은 징계사유로 보이며, 퇴학 조치와 관련해 학교 측의 과실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양 후보자는 대법관 시절 참여한 전원합의체 선고 75건 가운데 소수의견(6건)이 8%에 불과하다. 별개의견은 3건, 보충의견은 7건을 냈다. 소수 의견 빈도가 15% 안팎을 기록했던 대법관들도 상당수임을 고려하면, 양 후보자는 대부분 다수 의견에 동조했던 셈이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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