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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프랜차이즈 홍수 속에 살아남은 '동네 빵집' 명장들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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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람/ 프랜차이즈 홍수 속에 살아남은 '동네 빵집' 명장들의 비결

입력
2011.08.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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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드라마 가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유는 호화 캐스팅이 아니었다. 고객의 사랑을 받는 빵을 만들기 위한 제빵인들의 장인정신, 그 스토리와 메시지가 시청자 가슴을 파고 든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의 이름을 딴 '김탁구빵'이 판매된 곳은 제빵기술자와 제자들이 빵과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가 아니었다. 본사 공장에서 배달돼 온 냉동생지(성형된 반죽)를 기사가 오븐에서 구워내기만 하면 되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이었다.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빵이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불티나게 팔린 이 아이러니는 현재 빠른 속도로 프랜차이즈에 장악 당하는 빵집의 현실을 대변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퇴직자들의 창업 아이템으로 시작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제과점 상위 프랜차이즈 2개사의 가맹점 수는 2007년 2,427개에서 2008년 2,825개, 2009년 3,496개, 2010년 4,000여개로 매년 급속히 늘어났다.

그 결과는 다양성의 상실이었다. 모든 빵집이 같은 맛을 내는 빵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뭔가 색다른 맛, 버터의 풍미가 살아있는 맛, 오래 숙성해 깊은 맛의 빵을 찾는 소비자들은 윈도 베이커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평생을 제과제빵의 외길로 살아가며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틈바구니 속에서 열정과 인내로 살아남은 윈도 베이커리의 비결을 들어 봤다.

친환경 자연발효빵-김영모 과자점

김영모 과자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모든 빵이 다 맛있다"는 것이다.

국내 7명뿐인 제과명장 중 한명인 김영모 사장은 급속 발효를 위한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유산균과 효모 등을 사용한 천연 발효 방식을 오랜 연구 끝에 자체 개발해 빵을 만들어 오고 있다. 단팥빵, 소보루빵 같은 기본 빵부터 포카치아, 브레첼 등 유럽에서 건너 온 건강빵까지 모든 빵을 6~24시간 숙성시켜 만든다.

현재 김영모 과자점의 4개 매장에 공급하는 빵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이학순 이사는 "충분히 발효한 빵이라 소화도 잘 돼, 먹은 후 더부룩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료도 일반 밀가루에 비해 2.5배 비싼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큼직한 빵 2개만 고르면 1만원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비싸다.

처음부터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으므로 애초 저가 프랜차이즈와는 경쟁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호텔신라의 아티제 등 고급 베이커리 체인이 바로 인근에 속속 들어서면서 경쟁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이 이사는 그러나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매출이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었다"면서 "최근 케이크 위주로 진열을 바꾼 것을 보면 빵맛으로는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을 이제 경쟁점포도 안 것 같다"고 말했다.

끊임없는 배움의 열정-리치몬드 과자점

젊은이들이 많은 홍대와 이대 근처에서 3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 리치몬드 과자점은 1979년 창업한 국내 대표 제과점 중 하나다. 창업자인 제과명장 권상범 회장은 전통적인 도제 방식으로 기술을 익힌 뒤 일본과 유럽 각국을 드나들며 다양하고 새로운 빵 만드는 비법을 익혔다.

권 회장은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곳곳에 널려 있는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30여년 전 창업한 리치몬드가 아직도 사랑 받는 비결로 '끊임없는 배움의 열정'을 꼽았다.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빵을 해외에서 계속 배워오기 때문에 리치몬드에는 다양한 빵 속에서 고르는 재미가 있다.

권 회장은 프랜차이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빵업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 프랜차이즈 제과점을 비집고 특색 있는 빵으로 승부하는 진짜 빵집이 다시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는 "수년 안에 소비자들이 똑같은 빵맛만 가득한 현실을 용납하지 않게 될 것"이라면서 "최근 자신만의 개성 있는 빵을 만드는 젊은 '오너쉐프'(제빵기술자 겸 빵집 주인)들이 서교동 곳곳에 작은 빵집을 내고 있는데, 이들이 결국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맛있고 합리적인 가격-브랑제리 르와르

앞서 두 제과점이 국내 최고의 빵집으로 이미 인정 받은 명장의 집이라면, 여의도의 '브랑제리 르와르'는 11년 전 오너쉐프인 강원재 사장이 아파트 상가에 낸 작은 동네빵집이다.

강 사장은 비싼 가격표를 붙여 놓아도 고객들이 이해하는 명장들의 빵집과는 달리 프랜차이즈와 겨루기 위해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합리적 가격'을 채택해야 했다. 갓 구운 빵을 내놓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 수십 번도 더 빵을 구웠고 배달도 마다 않는 노력을 기울인 결과, 이제 여의도에서는 알아주는 빵집이 됐다. 쉬폰 케이크와 1,000원대의 합리적 가격에 맛도 좋은 기본 빵들, 웬만한 떡집보다 맛있는 찹쌀떡 등이 대표 메뉴다.

강 사장은 프랜차이즈로 인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난을 꼽았다. 제과점 직원들은 적은 월급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도 기술을 배워 자신만의 가게?차린다는 꿈이 있어 참아내는데, 프랜차이즈 공세에 동네빵집은 구경조차 어려워지자 힘들게 배울 열정을 잃고 아예 꿈을 접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빵집에서 일하는 직원이 11명인데 프랜차이즈는 2명만 있어도 할 수 있다"면서 "프랜차이즈 빵집이 전체 제빵업계를 장악하는 것은 일자리 측면에서도 손실"이라고 말했다. 또 "프랜차이즈의 공세에 제과 기능장인데도 빵집을 프랜차이즈로 전환한 곳이 있다"며 "우리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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