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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인류는 왜 멸망 했는가, 2133년 사이보그들 TS 엘리엇 학술대회 여는데…

입력
2011.08.1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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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조현 지음/민음사 발행ㆍ224쪽ㆍ1만1500원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는 이런 짤막한 글이 실려 있다. '현재 클라투 행성 지구 주재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조현(42)의 상상력은 이 소개처럼 '외계에서 인류 보기'에 다름 없다. 인류의 전통에 아무 것도 빚지지 않은 외계인의 위상에서 인류 역사와 문명을 이리 저리 뒤집고 꿰 맞춰 보거나, 때로 하나의 거대한 농담거리로 만든다.

7편의 단편이 수록된 그의 첫 소설집 <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는 이런 외계적 상상력으로 인류가 거쳐온 역사나 문명을 재기 발랄하게 횡단한다. 등단작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은 이 작가의 작품 세계의 예고편 격. 인류는 멸망하고 휴머노이드 문명이 건설돼 있는 2133년 사이보그들이 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는 설정.

학술 논문 형식을 빌린 소설은 피에르 부르디외, 헨리 데이비드 소로 등 실제 역사적 인물의 텍스트와 메리 설리반이란 허구의 인물이 쓴 텍스트를 능청스럽게 엮는데, 사이보그들은 문명의 불임을 선포한 엘리엇의 경고를 왜 인류가 무시했는지를 되짚는다. 소설에서 메리 설리반은 엘리엇의 숨겨진 연인으로서 그녀가 쓴 <종이 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 이 '황무지'의 실질적 토양으로 그려지는데, 시치미 뚝 뗀 교묘한 야유와 풍자가 날카롭다.

표제작 '누구에게나 아무 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는 맥도날드사 한국 법인이 증정품으로 시(詩)를 나눠주는'마이클 버거'라는 신제품을 개발해 대박을 치면서 정크푸드사인 맥도날드사가 친환경 친인간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설정 하에서 그 제품이 나오기까지의 우연한 역사를 그린 단편. 햄버거의 역사를 현실과 가상을 뒤섞어 재조립하면서 가상의 미시사를 만든 것이다. 그외 범우주적 존재인 소울마스터의 이야기인 '라 팜파, 초록빛 유형지' 등은 직접적으로 외계의 존재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러 텍스트를 자유 분방하게 넘나드는 잡종식 글쓰기에는 문학뿐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지식이 뒷받침돼 있다. 실제 역사와 가상을 현실인 것처럼 교묘히 이어 붙이는 이야기 가공에선 포스트모던 문학의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도 떠오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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