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아나톨 칼레츠키 지음·위선주 옮김/컬처앤스토리 발행·478쪽·2만원
"2008년 9월 15일에 무너진 것은 단지 하나의 투자은행이나 금융시스템이 아니다. 정치철학과 경제시스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무너졌다."
최근 회자되는 '자본주의 4.0'이란 말은 영국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아나톨 칼레츠키가 2010년 6월에 낸 <자본주의 4.0> 에서 처음 썼다. 칼레츠키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붕괴되고 새로운 자본주의체제로 진보하고 있다며 이 새로운 시스템을 자본주의 4.0으로 명명했다. 자본주의>
칼레츠키는 자본주의도 생명체처럼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1.0은 미국, 프랑스의 정치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시작돼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1929년 대공황으로 막을 내린 자유방임 자본주의다. 뒤이은 자본주의 2.0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3년 주창한 뉴딜정책, 린든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등 복지국가 개념을 포괄하는 정부 주도의 수정자본주의다.
이 버전은 40년이 지난 70년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경제파고가 닥치자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자유시장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3.0인 신자유주의로 대체됐다. 저자는 다시 40년이 지난 2008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는 자본주의 4.0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칼레츠키는 자본주의를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를 시장과 정부, 정치와 경제의 길항관계에서 찾았다. 그는 "자본주의 2.0 시대에는 언제나 정부가 옳고 시장이 잘못됐다는 식이었고, 자본주의 3.0 시대에는 언제나 시장이 옳고 정부가 잘못됐다고 여겨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제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정부와 시장 모두 잘못될 수 있고, 때로는 이런 오류가 거의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시장 모두 서로가 잘못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 정치와 경제가 자본주의 3.0 시대처럼 서로 적대적이지 않고 협력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4.0 시대에는 정부와 민간경제가 더욱 가까운 관계가 된다.
자본주의 4.0의 또 다른 특징은 시장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공공정책과 경제전략에서 실험정신과 실용주의를 강조한 데 있다. 저자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시장과 정부의 결정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며 갈지자 행보를 할 것이다. 정부정책은 경제시스템이 변화하는 여건에 적응하면서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실용주의는 시행착오와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어 아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4.0은 공공과 민간 부문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는 점에서 혼합성 경제이고, 상황과 여건에 따라 경제규칙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점에서 적응성 경제다. 그래서 그는 자본주의 4.0을 '적응성 혼합 경제'라고 규정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자본주의가 4.0으로 진화하고 있다면 이제 한국도 새로운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새로운 성장전략을 심각히 고민할 때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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