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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경연, 왕의 공부' 공부의 모범생 세종·성종 때 조선의 유교정치 활짝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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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경연, 왕의 공부' 공부의 모범생 세종·성종 때 조선의 유교정치 활짝 피었다

입력
2011.08.1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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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 왕의 공부/김태완 지음/역사비평사 발행·432쪽·2만2,000원

조선 명종 19년(1564년) 2월 13일 정오. 임금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보고 토론을 벌이며 공부하는 편전(便殿)의 경연(經筵)에서 홍문관의 기대승이 명종께 아뢴다.

"언로(言路)는 국가에서 매우 중대한 것입니다. 언로가 열리면 국가가 편안하고, 언로가 막히면 국가가 위태로워집니다." 당시 주요 관직 인사가 공식 발표도 전에 항간에 나도는 것을 두고 왕비나 공주 등이 인사에 개입하려고 소문을 퍼뜨린 때문이라고 사헌부가 상소하자 명종이 발끈한 것을, 감히 임금 면전에서 꼬집었다.

명종은 "언로가 통하고 막힘은 진실로 국가와 관계가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미진한 뜻이 있어 따져 물었으니 특별히 언로에 해로울 게 없다"는 핑계를 댄다. 하지만 기대승은 물러서지 않았다. "성상의 뜻은 이와 같더라도 옛사람의 말에 '가가호호마다 찾아가서 설명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말한 근거를 지금 거듭 따져 물으시니 듣고 보기에 매우 편안치 못합니다."

조선 임금들은 하루 세 차례 아침, 점심, 오후 신하들과 마주 앉아 경서와 역사서의 가르침을 듣고 묻거나 이를 확대해 기탄 없이 정사를 논의하는 게 일과였다. 제왕 교육의 장인 이런 경연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봉건 지도자가 총명한 신하들에게서 지혜를 빌려 대과 없이 나라를 통치해가는 효과적인 제도적 장치의 하나였다. <경연, 왕의 공부> 에서는 이 같은 제왕교육이 어떻게 펼쳐졌으며 그것이 지금 지도자에게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곱씹어 보고 있다.

책에 따르면 잠을 깬 임금은 어머니인 대비와 할머니 대왕대비에게 문안인사를 마치고 신하들을 만나 조회를 여는 데 이를 전후해 아침 경연인 조강(朝講)을 벌였다. 이후 식사를 한 뒤 업무를 보다가 정오에 주강(晝講)을, 오후 2시에 석강(夕講)을 갖는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는 특강 형태의 소대(召對)라는 것도 있고 이것이 밤에 열리면 야대가 된다.

경연은 별도의 부서가 맡은 게 아니라 사간원이나 홍문관, 예문관 등 여러 관서의 관리가 겸임했다. 특히 경적(經籍)을 관리하고 학문에 관한 행정을 펴며 왕에게 자문하는 홍문관의 관원이 중심이었다. 교재는 유가 경전과 역사서 위주여서, 경연은 철학,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 공부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사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끊임 없이 되묻고' 옛 경험에 비춰 현실 문제의 가장 나은 해결책을 찾으려는 제도였다는 얘기다. 가장 많이 쓰인 교재로 <대학연의> <자치통감강목> <서경> 이 꼽힌다.

분량으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정말 규명하고 싶었던 것은 이 같은 제왕의 인문학 공부가 통치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하는 대목인 것 같다. 아무리 조선이 기록의 왕국이었다고 하지만 사료만 가지고 경연과 통치 업적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조선 유교정치는 '경연의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는 세종, 성종 때 활짝 피었고, 경연을 폐지하는 등 '문제아'였던 세조나 연산군 때 피폐했다는 것은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선조대는 이황, 기대승, 이이 등 조선의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배출된 시기였고 임금은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지만, 두 차례 왜란을 치르는 등 민중의 살림은 힘들기 그지 없었다. 저자는 이 같은 실패도 경연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실제로 이이는 '선조가 경연에서 건성으로 강론할 뿐 마음을 열어 강론을 듣고 정책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실망을 토로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역대 왕들 가운데에서도 성공한 왕은 몇 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경연에 적극 참여하고 열심히 강론에 임한 왕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왕들보다 치적을 더 쌓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런 공식은 지금의 통치 행위에 적용해도 무방할 것이다. 웃지도 못할 지난 몇 명의 우리 대통령 사례를 들어 가며 '인문학적 통찰과 교양을 갖춘' 지도자를 갈망하는 저자에 공감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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