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악재였으나 파괴력은 배가됐다. 역시 내우보다 외환이 원흉이었다. 19일 우리 증시는 대외변수에 취약한 수출주도형 소규모 개방경제의 설움을 다시 통감해야 했다. 극에 달한 공포심리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간밤 유럽과 미국증시의 동반 폭락이 화근이었다. 18일(현지시간) 선진시장엔 잡다한 악재가 쏟아졌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이 침체에 위험스럽게 다가서고 있어 향후 6~12개월 안에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올해 4.2%→3.9%, 내년 4.5%→3.8%로 낮췄다.
미국의 경제지표마저 부진했다.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0.5%)은 3월 이후 최고치로 시장 예측보다 높았고, 지난주 신규실업수당 청구자 수는 40만8,000명으로 역시 시장 예상(40만명)을 웃돌았다. 지난달 주택매매 건수 역시 올해 최저 수준이었다.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 단계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유럽은 재정위기가 점차 민간 부문으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한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로부터 5억달러를 일주일간 빌린 게 불안의 빌미를 제공했다. 오죽 자금조달 상황이 신통치 않으면 ECB에 손을 벌렸겠냐는 것이다. 리보(런던은행간 금리) 등 단기 자금조달 비용 상승과 스위스중앙은행의 갑작스런 달러 차입도 유럽 금융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여기에 월스트리트저널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미국 내 유럽계 은행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한 게 불안심리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럽 은행들의 달러 차입구조가 의심스럽다는 것인데, 비관론자들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 금융회사가 망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기억하라고 경고했다. 로이터통신은 "미 금융당국의 조치가 시장의 불안감을 조성해 유럽 은행들에 예상치 못한 자금조달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벤트처럼 쏟아지는 악재보다 문제의 본질과 이면을 들여다보라는 충고도 있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과 유로존 금융 위기의 이면에는 결국 경제전략과 리더십의 실패가 존재한다"며 "이들 정부가 세계 금융시장이 처한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이날 나온 악재들은 대부분 곁가지에 불과하고 정작 핵심은 누구도 믿지 않는 투자심리와 이를 부추기는 글로벌 정책공조의 부재라는 것이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이미 수 차례 나왔는데도 다시 폭락하는 건 획기적인 정책공조를 기대할 수 없는 대세하락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일 우리 증시가 유독 많이 망가진 데 대해선 경제구조에서 답을 찾았다. 홍순표 대신증권 시장전략팀장은 "아시아 증시 중 우리와 대만이 가장 많이 빠진 건 IT와 외국인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며 "실물경제지표가 더블딥을 부를 만큼 악화한 것도 아니고, 간밤에 나온 악재들도 새롭거나 큰 이슈가 아닌데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수급은 상당히 여유가 있는 만큼 공포심리만 잦아들면 언제든 증시로 돈이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김성봉 삼성증권 시황팀장은 "2008년엔 주식형펀드에 100조원이 묶여 있어서 폭락 이후를 대비할 수 없었지만, 올해 초 31조원이 환매된 이후 주식형펀드로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 있고 대기자금도 충분해 일정 정도 주가가 빠지면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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