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에는 아주 급한 일 아니면 뒤로 미루고 2학기에 교장이 오시면 추진하자고 교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됐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네요."(박진관 영림중 교감)
"아이들은 교장 없는 학교에 익숙해졌지만 학부모는 불안합니다. 교장 없는 학교로 알려지면서 인근 초등학생들 가운데 영림중에 가고 싶지 않다는 학생도 있다고 합니다."(학부모 A씨)
35일 간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맞은 19일 오전 서울 구로구 영림중학교. 2학기 개학식은 따로 열리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새 교장과 학생들이 상견례를 할 자리였다. 그러나 행사는 생략됐고,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수업을 받았다.
영림중학교 학생들이 결국 교장 없이 2학기를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2월 절차상의 이유를 들어 내부 공모로 선출된 전교조 소속 박수찬 교사의 임용 제청을 거부했고, 재공모로 박 교사가 다시 후보자로 결정되자 민노당 후원금을 내 기소된 것을 문제 삼아 한달 넘게 결정을 미루고 있다. 영림중은 올해 2월부터 7개월째 교장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교과부는 "후보자의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임용제청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김윤희 학부모회장은 "교장 임용 문제 때문에 마음 편히 지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좋은 학교를 만들어 보자며 학내 구성원들이 힘을 모았고, 학교 분위기를 건강한 쪽으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겼는데 정치적 이유로 좌절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교장 부재로 영림중은 새 사업이나 시설공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한 교사는 "도서관 증축이 학교의 숙원 사업인데 예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교장 부임을 앞두고 독자적으로 일을 벌일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림중은 재학생이 1,170명인데 도서관 좌석은 36석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영림중 관계자는 "교장은 학생의 교육을 위해 지원하는 자리고, 교과부와 교육청은 학교를 지원하는 곳이다. 피해를 보는 학부모들이 화를 내고,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는 교육당국이 사과해야 하는데 오히려 학부모들이 교장을 임용해달라고 읍소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교장 부재에 대한 학생들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2학년 김모양은 "새 교장선생님이 오셨다면 좋았겠지만 이전과 딱히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교장 부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박진관 교감은 "그 동안 현상유지 차원의 행정관리에 신경 썼지만 이젠 교사들과 협의해 학교 운영 방향과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며 "보통 2학기가 되면 교장들은 내년 구상을 하는데 영림중은 그럴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영림중 학운위와 학부모회는 교장임용촉구 서명운동을 벌여 약 3,0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교과부, 서울시교육청, 청와대 등에 전달했다. 학부모회는 조만간 내부형 교장 공모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알리는 학부모 신문을 만들어 학생들의 가정에 배포할 계획이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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