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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외국인 얼굴 왜 구별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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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람/ 외국인 얼굴 왜 구별 못할까

입력
2011.08.1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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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대부분이 갸름한 얼굴에 큰 눈을 갖고 있어 알아보기 힘들잖아. 한 번은 소녀시대 티파니가 예쁘다고 해서 유심히 봤는데 다음에 보니 다들 티파니 같더라고."

가정주부 홍계숙(53)씨는 "걸그룹은 그냥 걸그룹이야"라며 이렇게 말했다. 걸그룹 멤버들은 대개 달걀형 얼굴에 반달 모양의 눈을 하고 있다. 같은 미(美)의 기준으로 선발하거나 성형했으니 같아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쏙 들어간 눈과 오뚝한 코를 빼면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서양인들을 볼 때도 많이 헷갈려 한다. 서양인 역시 얼굴만 보고서는 동양 사람들을 잘 구분하지 못 한다. 왜 그럴까.

같은 인종 볼 때 뇌파 세기 커

최근 잇따라 발표된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따라 가다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59개 전극이 달린 뇌파측정기를 백인 여성 18명의 머리에 씌운 다음 각기 다른 인종의 성인 남성 얼굴 사진을 보여줬다. 뇌에 전달된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뇌파 P2와 N200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P2는 사진을 처음 본 시점에서 2밀리초(1㎳=1000분의 1초) 후에 뇌의 뒷부분인 후두엽과 두정엽에서 나온다. 이들 부위는 바라본 대상에게서 얻은 정보를 종합하는 곳이다. 가령 사람을 봤다면 얼굴형, 헤어스타일, 눈동자의 색이 어떤지 특징을 모으는 것이다. N200은 뇌가 시각정보를 기억할 때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에서 관측된다.

측정 결과 같은 인종인 백인 남성의 사진을 봤을 때 뇌파가 더 셌다. 연구를 주도한 헤더 루카스 교수는 "뇌가 자극에 활발히 반응할수록 뇌파가 크게 나온다"며 "같은 인종을 볼 때 P2와 N200이 크다는 것은 뇌가 이들의 특징을 더 많이 모으고 정확하게 기억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같은 인종의 얼굴을 더욱 잘 구분한다는 얘기다.

영국 글래스고대 연구진은 다른 뇌파인 N170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N170은 뇌가 바라본 대상을 범주화할 때 나온다. N170의 세기는 실험자가 같은 인종과 다른 인종의 얼굴 사진을 처음 봤을 땐 비슷했다. 하지만 이 뇌파의 세기는 같은 인종의 얼굴 사진을 두 번째 볼 때 확 줄었다. 다른 인종은 얼굴 사진을 처음 보든 두 번 보든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동양인이 서양인을 볼 때 N170이 그대로라는 것은 뇌의 인식이 '서양인이구나'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세세한 특징을 알아보고 얼굴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최준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같은 자동차를 봐도 헤드라이트나 휠의 모양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과 '자동차네' 하고 그 이상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얼굴 표준모형이 원인

뇌 과학에선 이런 현상을 '다른 인종 효과(the other race effect)'라고 한다. 이승환 임상감정인지연구소장(인제대 일산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은 "다른 인종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얼굴 표준모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표준모형은 얼굴을 인식하는 일종의 기준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표준모형과 비교해 눈이 큰지 입은 삐뚤어지지 않았는지를 판단한다. 이 모형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을 계속 보고 자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한국인에 관한 표준모형을 갖고 있다.

정우현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누구의 캐리커처인지 잘 알아보는 이유는 그 사람의 특징을 과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과한 특징을 갖고 있으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사람 기준에선 모든 흑인들이 두꺼운 입술을 갖고 있고, 대부분의 백인은 코가 오뚝하게 보인다. 그만큼 개인별 특징을 찾아내 얼굴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코가 낮고 광대가 도드라진 동양인을 보는 서양 사람에게서도 마찬가지다.

표준모형 계속 변해

표준모형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따라 계속 변한다고 한다. 해외로 이민 간 사람이 처음엔 어려워도 얼마간 지나면 외국인의 얼굴을 잘 구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 동물의 생김새는 왜 구분하지 못할까. 동물도 분명 제각각 생겼을 텐데 사람에게 개는 개로, 소는 그냥 소로 보인다. 생김새 대신 몸의 크기, 꼬리 모양, 털 색깔 등으로 인식한다. 정우현 교수는 "양을 모는 유목민들은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양을 구분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일반인들이 동물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건 그럴만한 표준모형을 만들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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