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밤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흔치 않은 날이었다.
잠실과 인천 두 곳에서 팬들의 소요 사태가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흥적인 시위도 아닌,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된 집단 행동이었다.
인천 문학구장에서는 SK가 삼성에 0-2로 패한 뒤 성난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몰려 내려왔다. 마운드에서 유니폼을 불태우는가 하면 마스크를 쓰고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집단 시위로 번졌다.
오물이 날아들고 욕설이 난무하는 등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소방차가 출동해 화재를 진압하기까지 팬들의 거친 행동은 20여분간 지속됐다.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무력시위를 벌인 건 1990년 8월26일 잠실 LG-해태 경기 도중 1,000명이 뛰어들어 관중끼리 패싸움을 벌인 사상 최악의 소동 이후 두 번째다.
같은 시간 잠실구장 앞에서는 박종훈 LG 감독이 확성기를 들고 팬들 앞에 서는 해프닝이 있었다. 두산에 3-5로 패한 LG 팬들은 경기 후 중앙 출입구 앞에 진을 치고 “박종훈 나와라”, “박용택 나와라”를 외치며 청문회를 요구했다. 결국 박 감독이 구단 관계자들의 만류에도 직접 현장에 나서 “기대에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 아직 충분한 게임이 남아 있다. 지켜봐 달라”며 애원하자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팀 주장 박용택도 “죄송하다”고 팬들 앞에 선 뒤 대구 원정 버스에 간신히 올랐다.
LG 팬들이 집단 행동을 한 건 공교롭게도 이날 SK에서 전격 경질된 김성근 감독이 LG에서 해임됐던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이후 줄곧 하위권에 맴돌던 이광환, 이순철, 김재박 전임 감독 때도 현수막을 내거는 등 산발적인 시위는 있었지만 조직적인 데모는 없었다.
당시 LG 팬들은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김 감독의 하차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구단 버스와 잠실 실내체육관, 여의도 쌍둥이빌딩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대규모의 시위를 벌였다.
당시의 악몽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현재 SK 프런트다. LG 시절엔 준우승 한 차례였지만, SK에선 5년간 무려 4차례 우승을 이끈 김 감독의 경질에 팬들은 시즌 종료 후에 더욱 조직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LG 팬들 역시 롯데와의 승차가 벌어지면서 2002년의 ‘조직력’을 재현할 태세다. 김 감독의 준우승 뒤 9년째 포스트시즌 합류가 불투명해진 한 팀과, 김 감독의 ‘시즌 후 사퇴’ 폭탄 선언에 전격 경질로 맞불을 놓은 또 한 팀. 2002년 겨울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 18일 밤이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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