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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영국의 귀족과 거지? "우리 그냥 살게 놔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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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와 사람/ 영국의 귀족과 거지? "우리 그냥 살게 놔둬요"

입력
2011.08.1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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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500년부터 인도사회를 지배해온 카스트 제도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국에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인종과 종교에 따라 용어만해도 수십개로 나뉘는 카스트 계급은 인도에서 법적으로는 금지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인도 출신의 영국인 변호사 부부가 이 문제로 회사에서 차별대우를 받아 해고됐다며, 영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영국 전체 인구 가운데 5%를 차지하는 인도계가 여전히 오래된 악습에 얽매여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4년 전 영국 코벤트리에 있는 헤르 마낙 로펌에서 일하던 아마르딥 베그라지(33ㆍ여)와 비제이 베그라지(32)는 출신이 달랐다. 변호사 아마르딥의 카스트는 크샤트리아 계급인 자트(아리안족 후손의 무사)인 반면, 동료 변호사 비제이지의 카스트는 달리트(불가촉천민)였다. 그러나 둘은 인도계가 보다 엄격히 여기는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에 빠졌다. 2008년 둘이 결혼하려 하자 동료는 물론 회사까지 나서 만류했다. 로펌의 인도계 상사는 “비제이와 같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생명체야”라며 “연애와 결혼은 완전히 다르다”고 만류했다. 비제이도 “나와 결혼하면 회사에서 자리가 위태롭게 될지 모른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아미르딥이 전통 힌두교가 아닌 시크교 사원에서 결혼식을 강행하자, 주변에선 “자트 출신 소녀가 수렁에 빠졌다”며 손가락질했다.

아미르딥 부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지만, 결혼 이후 주변 환경은 모두 변해 있었다. 특히 직장에선 업무량이 부쩍 늘면서도 비서 도움은 줄고 월급도 동료들보다 작아졌다. 첫 아이를 낳았을 때 회사는 오랜 관례인 꽃 선물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7년간 실무팀장으로 일해온 비제이가 뚜렷한 이유 없이 해고됐다. 사랑에 대한 벌이라고 여기기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인도계 이민자들을 변모시키기로 결심하고, 영국 하원에 이 문제를 청원했다. 이에 영국 의회는 정부에게 카스트를 금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아미르딥 부부의 손을 들어줬다. 영국 내각은 평등법에 카스트를 이유로 한 차별할 수 없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밤새 자동차가 엉망으로 부서지는 등 주변의 압박은 계속됐고, 올 1월에는 아마르딥마저 해고되고 말았다. 부부는 결국 로펌을 상대로 카스트제에 따른 차별과 불법 해고를 했다며 영국 버밍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은 17일 영국의 5%를 바꾸기 위한 이들의 아픈 사연을 자세히 전하며, 최근 인도계 젊은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카스트에서 찾으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전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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