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중부지방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는 산 사람의 집뿐 아니라 죽은 이들의 안식처까지 앗아갔다. 올해 여름 집중호우로 18일 현재까지 경기도 내 공설ㆍ사설묘지에서 총 890여 기의 분묘가 토사에 매몰되거나 유실됐다. 수마가 휩쓸고 간 묘지들에서는 망자의 영면을 위한 그들만의 치열한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완전 복구에 1년 걸릴 듯
16일 경기 포천시 화현면 지현리 평화묘원. 공원묘지 입구에 어울리지 않는 냉동 컨테이너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자원봉사자들까지 달려 들어 수작업으로 약 2주 만에 무너진 토사에서 찾은 유골들을 임시 보관된 곳이다. 천주교 전농동성당이 운영하는 이 묘원은 집중호우에 분묘 21기가 완파되는 등 270여기의 분묘가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이 날도 마치 거대한 구멍이 뚫린 듯 움푹 꺼진 묘지 한쪽 경사면에는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위쪽 묘역으로 올라가는 일부 도로는 추가 붕괴 위험으로 통제됐다.
묘원 측은 곧 묘주들이 참관한 가운데 회수한 유골들을 검안할 예정이다. 매장한 지 얼마 안됐거나 독특한 관을 썼다면 비교적 확인이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DNA검사까지 해야 한다. 문제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 묘주들이 있다는 것. 묘원 관계자는 "유실된 묘의 묘주들 중에서도 3, 4명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의 광주공원묘원도 매몰된 분묘의 묘주 10명 정도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묘주 확인 전에는 작업을 할 수 없어 이런 분묘들은 비닐만 덮어 놓고 대기 상태에 있다.
지자체와 경찰은 내용증명이 반송된 묘주들 신원 파악에 분주해졌다. 광주시 관계자는 "묘주가 안 나타나면 사돈의 팔촌이라도 찾아야 한다"며 "허락 없이 복구했다가는 나중에 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완전복구에는 짧아도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릴 것으로 공원묘원 측은 예상하고 있다. 분묘 200기 가량 피해를 입은 광주 한남공원묘원의 이운종 전무는 "경험상 DNA 검사로 유골 주인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며 "내년 가을 정도는 돼야 정상화될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천재냐 인재냐, 복구비용 논란
묘지 복구에 들어가는 비용도 논란거리다. 공설묘지에는 보건복지부의 예산이 지원될 수 있지만 사설묘지에 대한 피해는 당사자들 간에 해결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설묘지 계약서에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는 묘주가 부담한다'는 식의 문구가 포함돼 있지만 어디서부터가 천재지변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어 분쟁 소지가 다분하다.
포천 평화묘원에서는 갈등이 이미 가시화됐다. 분묘가 유실된 묘주들은 이달 초부터 "관리 부실로 인한 인재"라고 주장하며 공원묘원 측에 복구를 촉구하고 있다. 한 묘주는 "묘원에서 '천재지변이니 묘주들 부담'이라고 하니까 묘주들이 발끈한 것"이라며 "포천에 묘지가 10여 곳 있는데 유독 여기만 무너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묘주들은 과거 다른 지역 묘지 복구 사례를 근거로 DNA검사비 부담 및 대체 묘지 제공 등의 요구사항을 묘원 측에 제시한 상태다.
전농동성당의 최 미카엘 신부는 "묘원이 문을 연 뒤 수십 년 동안 이런 피해는 처음이지만 신앙인의 양심에 따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외에도 전국의 묘지 피해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장사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폭우로 피해를 입은 묘지들의 상황은 대동소이하다"며 "누구도 피해 원인에 대해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김창훈기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