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운동가의 단식투쟁이 인도를 흔들었다. 그를 지지하는 시위대 수만 명이 이례적으로 인도 전역의 거리를 뒤덮었다. 만연한 부패에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이었다.
인도에선 흔치 않은 대규모 시위사태를 촉발한 것은 사회운동가 안나 하자레(74)가 보다 엄격한 반부패 법안을 요구하며 시작한 단식투쟁이었다. 16일 경찰이 하자레의 단식을 막으러 구금하자 17일 인도 전역으로 시위가 번졌다. 18일 오전 경찰은 결국 하자레에게 15일간의 공개 단식투쟁을 허용했다. 교도소 밖에서 밤새 진을 치고 있던 수백명의 시위자들은 "하자레가 이겼다"고 소리치며 꽃잎을 흩뿌렸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하자레 지지자들은 학생, 직장인, 주부, 은퇴한 관료, 노숙자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뉴델리 변호사들은 법관도 반부패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하루 파업을 벌였고, IT 허브 도시인 하이데라바드에서는 학생들이 강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안나"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시위자들은 만모한 싱 총리의 인형을 불태웠다. 시위를 조직한 변호사 프라샨트 부샨은 "이 나라 사람들은 반부패 감시기구가 활동하도록 할 권리도 없느냐?"고 꼬집었다.
군 운전사 출신의 안나 하자레는 2003년부터 간디 식 불복종운동으로 반부패운동의 상징이 된 인물. 간디가 쓰던 단식투쟁으로 무장하고, 간디의 패션인 흰 무명 옷과 모자를 입는 그는 4월 반부패 감시단체 법제화를 압박하기 위해 4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반부패법이 8월 초 의회에 상정됐지만, 총리와 고위 법조인이 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자 16일 단식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싱 총리는 "하자레가 자기 의견을 표현할 자유는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법안만을 의회에 강요하는 건 틀린 생각"이라고 말했다.
항의방식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운전면허취득부터 사업자등록까지 모든 일에 뇌물이 일상화한 인도의 부패에 대해선 아무도 부정할 수가 없다. 17일 두 딸과 거리행진에 동참한 50대 주부 산디야 야다브는 AFP통신에 "딸의 성적이 평균 90점인데도 뇌물을 주지 않아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용실을 내기 위해 450달러를 뇌물로 쓴 아니타 트레한은 "우리는 너무나 부패했다. 아무 두려움 없이 뇌물을 주고 한 순간도 주저 없이 받는다"고 한탄했다. 의대생 안잘리 야다브는 어머니의 사망증명서를 발급하는 데에도 뒷돈을 줘야 했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이제부턴 부패와 싸우겠다"고 그는 다짐했다.
최근에는 광산업 허가와 관련해 수십억 달러의 뇌물이 오간 사건, 390억달러의 비용을 초래한 통신사 뇌물 사기사건 등 스캔들이 인도를 시끄럽게 했다. 하지만 의회와 정부는 비난과 모욕만을 주고받으며 민생과 사회개혁을 등한시하고 있다. 독립이 아닌 부패와 싸우는 제2의 간디는 일단 작은 승리를 거뒀지만 내부의 적을 물리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고 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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