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흔들리고 있다. 2주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가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사상 최초로 한 단계 강등하면서 미국 재정 부실화의 심각성이 재확인됐다. 아직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중 무디스와 피치는 미국 국채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으로 유지하고 있다지만, 이번 강등으로 미국의 달러 패권에 금이 가고 말았다.
단기적으로는 미국이 어느 정도 수준의 재정긴축을 펼쳐 글로벌 금융시장과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려 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주식시장 불안은 금융위기로, 재정위기는 더블 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소비와 과투자가 화근 불러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 재정위기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과 가정, 기업이나 국가 모두 마찬가지다. 소득만큼 소비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수입보다 더 많이 소비하려면 빚을 얻는 수밖에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사채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국채다. 어느 경제 주체든 필요에 따라 빚을 얻어 쓸 수 있다. 효율적인 소비와 투자를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과소비와 불필요한 투자를 위해 과도한 빚을 얻게 되면 결국 주변으로부터 빚을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게 되고, 경제주체에 대한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진다.
신용과 신뢰도, 정치적 리더십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동전의 양면이다. 국내에서나 국제사회에서나 신용과 신뢰를 쌓으면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고, 합리적인 정치적 리더십은 신뢰도를 높인다. 반면 과소비와 과도한 투자로 신용이 하락하면 리더십도 약화된다. 세계 중심국으로서 미국이 이 시점에서 심각하게 점검해야 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재정위기를 초래한 과소비와 과도한 투자는 무엇이었는지, 부적절한 리더십을 행사한 경우는 없었는지 스스로 성찰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베트남전에 쏟아 부은 엄청난 과소비로 27년간 유지되어오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1971년 붕괴된 역사적 사실을 벌써 잊었는가. 대량학살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헛 구실로 이라크에 뛰어든 과잉대응이 미국의 리더십에 치명적 타격이 되었다는 점을 애써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이 진정한 세계중심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냉전시기에 국제경찰로 활약하던 모습, 소련 붕괴이후 누렸던 독점적 힘의 우위에서 벗어나, 현실에 걸 맞는 위상을 찾아야 한다.
과거 미국이 정치경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정치 엘리트들과 지성인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동시에 대안을 마련하는데 앞장서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와 이번 재정위기를 맞아 오히려 이들 정치 엘리트집단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정치권이 유권자의 표를 인식해 과도한 서비스와 재정 부담을 줄이려는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지성인이 침묵한다면 희망이 없다.
올해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부문 수상작인 '인사이드 잡'은 3년 전의 금융위기는 정부 고위 엘리트와 금융업계가 합작한 명백한 범죄였음을 고발하고 있다. 회전문인사로 견제와 균형의 메카니즘이 손상되고, 잘못에 대한 처벌도 흐지부지되면서 책임의 정치체제는 작동되지 않았다. '인사이드 잡'은 금력과 권력과 결탁하면 오만이 싹트고 결국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타산지석 삼아야 할 미국의 위기
이것이 미국만의 흔들림이 아니라 지구촌 전반의 문제임을 직시한다면 유럽 국가들, 신흥 발전국들과 함께 우리 역시 이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국가 재정 상태를 냉철하게 살펴 불필요한 수요를 줄이고, 정치권과 지성인들은 견제와 균형의 끈을 팽팽하게 당겨야 한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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