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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광화문에 대포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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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광화문에 대포 놓기

입력
2011.08.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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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군사박물관 앵발리드 앞을 걷다 보면 광장을 향해 일렬로 늘어 선 20여대의 나폴레옹 시대 대포가 보인다. 광을 낸 오래 된 대포들은 공원과 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 목적은 주말에 소풍 나온 아이들이 번쩍이는 대포를 어루만지며 선조들의 눈부신 영광을 기억하고 국가 권력을 경외하도록 고무하려는 것이다.

본질 벗어난 이승만 동상 세우기

도심에 세워진 기마상이나 위인상도 공원의 대포와 똑 같은 목적을 갖는다. 기념비는 대다수 사람들을 배제한 국가 중심의 역사를 미화한다. 그래서 미국의 공공 미술가 주디스 바카는 기념조각을 가리켜 공원에 대포 놓기라고 이름 붙였다.

MIT 교수 윌리엄 미첼은 더 비판적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기념조각은 폭력과 관계된다. 공격하고 강요하고 선동하고 변혁하려는 매개로서의 폭력의 무기라는 것이다.

해마다 8월이 되면 광화문에 대포 놓기 논란이 벌어진다. 올 해는 유달리 일부 언론과 정치인을 중심으로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이 많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최근에도 "서울 시내에 세워진 역사적인 인물 동상은 왜 이순신과 세종대왕뿐인가. 이승만 대통령 동상도 하나 세워야 한다"고 했다.

권력자들은 동상 세우기를 좋아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권의 정통성을 갖기 위해 여러 개의 위인 동상을 세웠다. 또한 14개나 되는 자신의 동상과 기념비를 만들고 지폐에 초상을 넣어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남산에 세운 동상은 동양 최대 크기였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 동상은 가장 많이 세워졌지만 1960년 7월 동아일보 표현대로 '민중의 뜻에 의하여' 차례로 철거된다. 지난 3월 부산 임시수도기념관 앞에 세운 동상도 붉은 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철거된 상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념 갈등이 심각하다. 이번 광복절에도 진보와 보수 단체는 따로 행사를 열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진보와 보수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는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기도 하고 친일잔재를 이용해 자신의 통치기반을 다진 독재자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이념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을 통합해야 할 유력 정치인이 동상부터 세우자고 하는 것은 사회를 대립과 분열로 이끌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승만 대통령을 재평가 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재평가와 동상 설치는 다른 문제다. 동상을 세우자는 것은 미첼 교수가 말 한대로 공격하고 강요하고 선동하는 폭력의 무기를 국민들 손에 들려주고 서로 싸우게 하자는 것이다.

광복절 마다 되풀이 되는 이승만 동상 건립 주장 이전에 숙고해야 할 것은 우리 시대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 가치로 선택할 것 인가 하는 문제다. 한 예로 언론은 항일 유적지 1,585곳 가운데 1,460곳이 이미 사라졌거나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보도했다. 우리 사회는 이승만 동상 건립에는 열중하면서 정작 보존해야 할 것은 외면한다.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는 권력의 욕망이 선택하고 편집한 역사가 아니라 사회의 외면 속에 사라져 가는 항일 유적지처럼 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사다.

진정 소중한 가치 찾아나가야

KBS 특집 '항일 유적이 사라진다'에 출연한 중국 사회과학 연구원 찐따천씨의 말은 중요하다. 그는 중국에서 활약한 독립투사들이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역사의 결함입니다. 정당을 초월해, 정치적 입장과 편견을 넘어서서 민족의 공통된 역사를 마주해야 미래를 향한 훌륭한 기초를 닦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선택한 역사를 강요하며 수 차례 철거된 동상을 다시 세우자는 주장은 어느 때보다 공생과 정의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분노와 절망을 안겨준다. 권력의 우상이 되어버린 동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민들 손으로 땅에 떨어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승만 동상 건립은 수십 문의 대포보다 더 강력한 갈등의 불꽃을 뿜어 낼 것이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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