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에어컨 바람이다. 여름 내내 뿌려 대는 비로 땡볕 더위 보다 더한 불쾌감을 피하려니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지만 바깥과 온도 차이가 커 서늘한 실내로 들어서면 갑자기 재채기가 나오거나 코가 막혀 힘든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럴 때 대다수가 일시적인 냉방병일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계속된다면 단순한 냉방병이 아닐 수 있다. 혹시나 해서 감기약을 먹어봤는데도 낫지 않는다면 알레르기비염이 아닐까 따져봐야 한다. 알레르기비염은 초반에 잡지 않으면 자칫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십상이다.
방치하면 축농증 중이염 결막염 천식
재채기가 잦으면 일이나 공부에 집중이 어렵다. 주변 사람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코가 계속 막혀 있으면 뇌에 산소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진다. 코 막힘은 특히 밤에 심해진다. 높은 습도와 기온으로 가뜩이나 잠은 안 오는데 코까지 말썽이면 다음날 아침 컨디션도 꽝이다. 콧물이 흐를 때마다 자주 훌쩍거리다 보면 어느새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파온다.
증상은 감기랑 별반 다르지 않은 호흡기질환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기와 달리 알레르기비염의 원인은 집먼지진드기, 곰팡이, 꽃가루, 먼지, 애완동물의 털이나 비듬 등이다. 이들 물질이 코 점막에 닿아 염증(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킨다.
특히 요즘처럼 기온과 습도가 높은 여름철엔 카펫 종류의 바닥재나 천으로 된 쿠션의자 속에서 집먼지진드기나 곰팡이가 활발히 번식해 증상을 악화시킨다. 에어컨 속에 있던 묵은 먼지도 실내 전체에 날리면서 알레르기비염 악화의 주범이 된다. 더운 바깥에 있다가 갑자기 서늘한 실내에 들어가면 이미 염증반응 때문에 상당히 예민해져 있는 알레르기비염 환자의 코가 온도 차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증상이 갑자기 심해진다.
알레르기비염을 오랫동안 방치하면 부비동염(축농증)이 된다. 콧속에 있던 염증 분비물이 부비강(콧속 뼈에 들어 있는 공기주머니)으로 넘어가 고이는 것이다. 이 분비물이 귀로 가면 중이염, 눈으로 가면 결막염까지 유발한다.
또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 코뿐 아니라 기도에까지 침투하면 내부 점막에 염증이 생겨 기도가 좁아진다. 그래서 기침이 나거나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이게 바로 천식이다. 코와 목은 기도 하나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알레르기비염과 천식은 거의 동시에 생길 가능성이 높다. 두 병을 '형제질환'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실제로 천식 환자의 약 80%가 알레르기비염을, 알레르기비염 환자의 약 30%가 천식을 함께 앓고 있다.
피하거나 줄이거나 면역 키우거나
알레르기비염을 치료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회피요법이다. 말 그대로 알레르기 유발 물질을 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이상운 과천 이내과 원장은 "실내 환경 관리만으로는 증상을 조절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을 정확히 진단 받고 효과적인 약을 복용해야 갑작스런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알레르기비염 치료약을 쓰면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도록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형태에 따라 먹는 약과 코에 직접 뿌리거나 넣는 약으로 나뉜다. 먹는 약으로 최근 나온 것에는 알레르기비염과 천식 증상을 한번에 조절할 수 있고 코 막힘에 특히 효과를 보이는 류코트리엔 조절제가 있다. 콧물과 재채기 같은 일반적인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먹는 항히스타민제는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
스프레이처럼 뿌리는 분무형 코티코스테로이드제는 약 성분이 염증 부위에만 전달되기 때문에 먹는 약보다 전신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콧속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모세혈관을 수축시켜 염증조직을 줄이는 물약 형태의 점막수축제(비충혈제거제)는 짧은 기간 동안 코 막힘을 해소해준다.
좀더 근본적인 치료로는 면역요법도 있다. 알레르기 유발 물질의 주성분(항원)을 처음엔 조금씩, 점점 양을 늘려가며 직접 투여해 면역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치료기간이 약을 쓰는 것보다는 오래 걸린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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