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찬사나 거창한 설명은 전부 군더더기"(진은영 시인)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주목받는 시인'이란 평이한 수식조차 어색한, 시집 독자라면 누구나 기대했을 법한 두 시인의 시집이 공교롭게 나란히 나왔다. 이장욱(43) 시인이 5년 만에 낸 세번째 시집 <생년월일> (창비 발행)과 심보선(41) 시인이 3년 만에 낸 두 번째 시집 <눈 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사 발행)이다. 눈> 생년월일>
1994년에 나란히 등단한 후 이씨는 소설가이자 비평가, 창비 편집위원으로서 전방위적 문학 활동을 펼치며 입지를 다졌고, 심씨는 외국 유학(콜럼비아대 사회학 박사)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08년 등단 14년 만에 묶은 첫 시집으로 문단과 독자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연구자이면서 시인으로서 최신의 이론과 감수성을 흡수한 이들의 문학 세계는 우리 문단의 최전선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질문이 없고 답만 아는 세계
민주화 운동이 완료되고 거대담론이 소멸하던 1990년대에 등장한 이들의 작품 세계가 겨냥하는 것은 그 합리적 근대 질서가 정착한 이후의 세계다. 예컨대 이장욱에게 그것은 어디에도 빈틈이 없는 서류 같은 세계이며 시작과 끝이 명료한 동사무소 같은 세계다. '동사무소는 그 질문이 없는 곳/ 그밖의 모든 것이 있는 곳/ 우리의 일생이 있는 곳/ 그러므로 언제나 정시에 문을 닫는/ 동사무소에 가자'('동사무소에 가자' 중). 심보선에게도 마찬가지로 이 세계는 '제대로 된 질문 하나 던지지 않지만 무수한 답을 소유한 자들'('집' 중)의 세계다.
철판처럼 단단한 듯 보이는 이 세계에서 그러나 시인의 예민한 귀는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이장욱에겐 이상한 입 모양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이며 심보선에겐 '옹알댐'이다. '밤이란 일종의 중얼거림이겠지만/ 의심이 없는/ 성실한/ 중얼거림이겠지만'(이장욱의'밤의 연약한 재료들' 중), '또 어떤 의문들이 남았기에/ 아이들의 붉은 입술은 아직도 어리둥절하고 끝없이 옹알댈까'(심보선의'의문들' 중)
그 소리들은 이 세계가 감추고 있는 어떤 균열이나 폭력, 혹은 욕망이나 억압된 타자들인데, 아무리 감추고 뚜껑을 닫으려 해도 흘러 넘치는 것들이다. '당신은 뚜껑으로 닫을 수 없다/ 모자라든가 자동문/ 오늘의 뉴스로도'(이장욱의 '흘러넘치다' 중)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근대의 이성적 질서를 추궁하는 것이 두 시인의 시작(詩作)인 셈. 특히 그 세계의 디딤돌은 잘 알려져 있듯,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나'라는 주체인데 시인들은 그 '나'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의심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공통점은 한국일보에 '시로 여는 아침'을 연재중인 진은영 시인이 한 권에 발문을, 한 권에는 추천사를 썼다는 점이다.
세계의 끝, 혹은 사랑을 통한 타인과의 연대
이 같은 공통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두 시집은 그러나 확연히 다른 색깔을 띠고 있다. 이장욱의 시집이 곳곳에 '시체'의 이미지가 떠다니며 차갑고 어둡다면, 심보선의 시집은 온화한 숨결이 흐르면서 따뜻한 온기를 품는다. 이는 이장욱이 이 세계의 균열을 밝히며 '세계의 끝'으로 나아 가는데 반해, 심보선은 그 균열 너머에서 타자와의 연대를 더듬고 있기 때문이다.
심보선의 시집은 특히 연애시집이라 부를 만큼 영혼과 영혼을 이어주는 사랑에 대한 밀도 높은 시어들로 가득하다. 타자와의 우연한 만남조차 운명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랑의 힘이다. '나는 세계를 죽도록 증오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내가 세계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Mundi에게'중) '시인이여, 노래해달라/(중략) 모든 것을 극복하고 생존하여 바로 오늘/ 쪽동백나무 아래에서 당신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음에 대해'('사랑의 나의 약점' 중) 나와 너의 빈 공간을 차지한 것은 바로 사랑이며, 이를 통해 '뱃사람들의 울음'과 '이방인의 탄식'을 듣는다.
심보선이 최근 보이는 활동도 이런 시적 경향과 뗄 수 없어 주목된다. 근래 문단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문학의 정치성' 문제를 활발하게 비평하면서, 용산참사를 비롯해 최근의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희망버스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물음 하나. 이런 시적 경향이라면 심보선의 시집이 창비에서, 이장욱의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와야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독자라면 1980년대 독자임에 분명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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