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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둘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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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둘레길을 걷다

입력
2011.08.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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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몸을 써서 하는 운동에 영 소질이 없다. 소질이 없다 보니 안 하게 되고, 안 하다 보니 점점 더 못하게 되고, 못하니까 아예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다. 어릴 적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체육이었다. 대학에서 교양체육을 필수로 듣는데,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중 한 종목을 골라야 했다. 그 셋 중 어느 하나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그나마 제일 쉬워 보이는 배드민턴을 택했다. 서브 넣는 내 모습을 본 교수님이 '마치 영구가 제기 차는 것 같다'고 놀렸다. 셔틀콕은 땅에 떨어지고 라켓만 휘두르는 내 모습이 꼭 그렇게 보였나 보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 나는 배드민턴을 해본 적이 없다.

몸 움직여 하는 운동뿐 아니라 요즘 건강을 위해 많이들 하는 등산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산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산에 올라가면 잘 내려오질 못해서 등산이 싫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내리막길을 잘 못 내려 간단다. 그래서 토끼를 잡으려면 아래로 몬다고 한다. 전생에 토끼였나 보다고 스스로 한탄할 만큼 나는 경사진 산길을 내려오는 일이 무섭고 힘들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나이 먹어가며 건강도 걱정되기 시작하고 체력도 떨어지는 걸 느끼면서 나도 운동 하나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즐겁게 잘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으면 좋으련만, 큰 돈과 많은 시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탁구나 배드민턴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도 못한다. 등산도 싫다. 그러니 어떡하라고? 나 같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나도 어렵지 않게 즐겁게 할 수 있는 좋은 운동거리가 생겼다. 바로 둘레길 걷기다.

산이 좋아도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이 버거웠던 내게 산을 보며 둘레길을 걷는 일은 새로운 즐거움의 발견이다. 지난 가을 북한산 둘레길을 처음 갔었다. 제주도 올레길과는 또 다르게 흙길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걷는 일의 즐거움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땀나고, 적당히 운동도 돼서 내게 좋은 일을 해 준 듯한 기분이었다. 다만 둘레길 중간중간 일반 주택들을 지나야 해서 그 곳 주민들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나는 불암산 둘레길을 몇몇 지인들과 함께 갔다. 서울 끝자락에 그렇게 숲이 좋고, 나무가 좋고, 풀과 들꽃이 좋고, 바람이 좋고, 계곡이 좋은 산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둘레길도 남녀노소가 불편 없이 걸을 수 있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시골 출신임을 자처한 친구가 서울촌사람들에게 이름 모를 풀들이며 나무 이름들을 알려줘서 더 즐거웠다. 좋은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어서 즐거움은 더 컸다. 둘레길 아니어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 하며 걷는 길이면 그곳이 어디든 좋지 않을까만, 둘레길이어서 더 좋았을 거다. 둘레길을 걷는 중간중간 여우비도 만나고, 장대비도 만나고 구름 사이로 잠깐잠깐 고개 내미는 햇살도 만났다. 황순원의 '소나기' 소설 속에 들어와 있는 듯, 변화무쌍한 날씨 때문에 어린애들마냥 신나 했다. 다들 또 오자 했다.

그 날 달랑 세 시간쯤 걸었는데, 다리에 알이 배겼다. 산벌레에 물렸는지 다리가 벌겋게 부어오른데다 무척이나 가렵다. 그래도 몸건강, 마음건강, 정신건강에 참 좋은 일을 했다. 둘레길에 또 가고 싶다. 나만큼이나 운동을 못하고 싫어하는 딸아이와 함께.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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