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을 갚아나가는 고정금리형 대출 비중을 높이겠다고 공언한 정부가 큰 난관을 맞았다. 미국발(發) 금융쇼크 여파로 당분간 저금리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져서다.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당초 정책을 고집하기도, 그렇다고 8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문제를 그대로 두기도 곤란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들에게서 연도별 비거치식ㆍ분할상환식 고정금리 대출 비중 확대 계획을 받았다. 정부는 현재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5% 수준인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2016년까지 30%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대부분 은행들은 목표 달성 시한이 임박한 2015~2016년이 돼서야 고정금리 대출을 집중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추세를 관망하며 미뤄두고 있다가 목표 수정을 기대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아예 대출 자체를 못 늘리게 하는 데다, 금리가 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탓에 가뜩이나 없던 고정금리 대출 수요가 더 줄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대출원금 상환이 가계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져 경기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방침을 바꿀 뜻이 없어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들이 처음엔 장기자금 조달 여건 등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대출 증액분을 뒤에 몰아두면 최종 목표를 이행하지 못할 공산이 큰 만큼, 연차 목표 달성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가계 빚 증가 속도를 늦추고 금리 변동 위험성을 줄일 필요성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단기ㆍ변동금리 대출구조를 장기ㆍ고정금리 형태로 바꾸려는 정부의 정책 취지와 방향엔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원금 상환이 소비 여력에 줄 타격이 어느 정도 될지 불확실할 뿐더러, 자산가격만 믿고 능력을 벗어난 빚을 냈다가 자산가치 하락으로 대출이 부실화하는 경우를 막는 일이 더 시급하다는 견해도 많다.
다만, 고정금리 수요를 늘리기 위한 추가 대책이 나올 필요는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국제ㆍ거시금융연구실장은 "장기ㆍ고정금리 방식을 택하는 일정 금액 이하의 서민용 주택 구입자에게 세제 혜택을 더 많이 주는 방식으로 수요를 견인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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