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이 날로 복잡해지는데도 사람들의 눈은 오히려 단순해지고 있다. 문제가 너무 복잡해져 한눈에 파악하기 어려우면 사람은 대개 능동적 인식을 포기하거나 문제를 최대로 단순화해 소화해 보려 애쓴다. 둘의 병행도 흔하다. 단순화 작업조차 자발적 판단보다 남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다.
단순화의 대표적 예인 이분법이나 흑백논리가 판을 치고, 세상을 온통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옳고 그름의 일방적 잣대로 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토론을 거쳐 마땅한 결론에 이르기는 대단히 어렵다. 정치적 고려까지 겹쳐지면 합리적 대안의 발견은 거의 물 건너 간 셈이다.
보편적 대상과 선택적 부담
내년 대선을 앞둔 한국사회가 꼭 그런 모습이다.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노선 싸움 흉내를 내지만 사안마다 기준을 헝클어뜨리는 바람에 여야 정치적 편 가르기만 남았다. 가령 '4대강 사업'에 찬성하면 보수이고, 반대하면 진보인 것처럼 말하지만 재정 지출을 통한 총수요확대 정책이 케인즈 경제학의 기둥이고, 토목사업은 그 전통적 수단이라는 점에서 전도된 시각이다.
W. 칼 비번이 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면서 대공황 같은 재난을 막을 방도를 연구했다"는 이유로 "케인즈는 보수적"이라고 밝힌 것과 비슷한 자세라면 또 몰라도. 마찬가지로 대북 인식에서 '우리 민족끼리' 수준에 이르면 극우 민족주의라 할 만한데도 '진보' 성향이 짙을수록 그런 주장에 가까워진다. 이를 '한국적 진보'라고 설명한다면 과거 유신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분칠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따라서 최소한 내년 대선 때까지는 정치색 배제가 건설적 논쟁을 위한 1차 과제다. 단순화의 오류를 덜기 위해 제3의 회색 절충론으로 흑백논리를 희석할 필요성도 커졌다.
내년 대선 주자들이 피해갈 수 없게 된 복지논쟁에 우선 적용할 만하다. 여야는 각각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내세워 내년의 본격적 논쟁 구도를 예고했다. 여당의 유력한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잠깐 구상만 밝힌 '생애 단계별 맞춤형 복지'는 그 자체가 일부 절충적 성격을 띠지만, 복지 수혜 범위라는 기준에 비추면 '선택적 복지'에 속한다.
논쟁의 핵심은 비용 대 효과 측면에서의 효율성이다. 얼핏 보편적 복지에 훨씬 많은 비용이 들 듯하지만 선택적 복지의 전제인 정확한 수혜자 선택 비용도 가볍지 않다. 고급 외제차를 굴리면서 공공부조 혜택을 누리는 노인이 있듯, 부자 자녀가 있어도 거지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인도 있다. 복지 혜택의 실질화를 위해 이를 일일이 가리는 게 쉬울 리 없다. 관계 공무원을 늘리기 위한 비용도 그렇지만, 두드러진 복지공무원 비리에 따른 누수 비용과 그에 대한 감시 비용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비용 논쟁은 예산 부담 측면만 열심히 거론했지, 그 예산을 뒷받침할 비용의 분담에 대한 논의는 빠뜨렸다. 그저 복지논쟁 자체에 대한 재계의 떨떠름한 반응이 어차피 부자들이 더 많이 짊어질 것임을 일깨웠을 뿐이다. 동시에 보편적 복지로 수혜자 선택ㆍ관리 비용을 줄이되, 늘어난 부담은 소득 구간별로 달리 지우는 제3의 해결책도 떠오른다. 국민의 복지 수혜 감각이 결국 수혜분에서 부담분을 뺀 액수에 근거하는 만큼, 높은 소득구간에 속한 사람은 혜택을 느끼기 어렵다. 보편적 복지가 선택적 복지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셈이다.
빠뜨릴 수 없는 '낙인 방지'
다만 이 과정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보편적 복지가 학교나 양로원, 보육원 등의 시설에서 이뤄질 때는 이른바 '낙인 효과'방지 장치를 두어야만 한다. 쉽게 말해 '얼마짜리'인지 시설이나 다른 이용자들이 알 수 없도록 해야 하는데 비용 수납창구를 시설과 분리하는 것으로 간단히 풀 수 있다. 복지 선진국에 정착된 장치로서, '보편적, 선택적' 논란 자체를 헛되게 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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