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에게 매달리지 마라.'
유럽의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늘 최대 경제국인 독일에 기댔다. 하지만 급속히 번지는 위기감 속에서도 독일은 발벗고 나서지 않고 있다. 16일 독일과 프랑스의 정상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최선의 대안으로 꼽히는 유로본드를 외면했다. 메르켈 총리는 '발등에 떨어진' 집안문제로 쉽게 움직이려 하지 않고, 마냥 주변국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 곤경에 처해있다고 영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 평했다.
메르켈 총리의 고민은 유로존을 적극 구하려 할수록 그 부담을 안아야 하는 독일 내 민심이 악화한다는 점이다. 그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은 9월 치러지는 베를린,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의회 선거에서 올 초의 선거 참패가 재현되지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민당은 50여 년간 집권했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회 선거에서 패하는 등 올 2~5월 5곳의 주의회 선거에서 쓴맛을 봤다. 반발을 무릅쓴 채 남의 집 빚 문제 해결에 앞장설 때가 아닌 것이다.
지난해 5월 그리스에 제공한 금융지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적법성 판단도 남아 있다. 기독사회당 등 야당은 다른 회원국의 부채를 떠안는 것을 금지한 유럽연합(EU)조약과 의회의 권한을 위배한 결정이라며 위헌 소송을 냈고 현재 심리가 진행중이다.
경제 사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독일의 2분기 성장률은 0.1%에 그쳐 전 분기(1.3%)보다 크게 하락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성장 전망은 회의적이지 않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상 세계적 경기침체가 독일에까지 그늘을 드리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윈 콜리어 베를린자유대 경제학 교수는 "메르켈 총리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충분히 지켜본 뒤 (지원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외교협회(CFR) 연구원인 찰스 쿱찬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메르켈 총리는 다른 지도자들처럼 여론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여론을 따라가고 있다"며 "독일 정부가 갈팡질팡하고 적극 나서지 않으면 유럽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렇자 독일처럼 반대하는 나라는 빼고 유로본드를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FT에 따르면 유로본드에 찬성하는 나라는 11개국으로 3조5,000억 유로 규모의 채권 시장을 만들면 평균 금리를 낮춰 위기 국가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메르켈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16일 정상회담은 유로존 공동경제위원회 신설, 금융거래세 부과 등 합의를 도출했지만 반쪽 자리 성과에 그쳤다는 평가다. 최대 관심사였던 유로본드 도입 및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에는 합의하지 못해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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