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서민·공정" 외친 MB정부 3년 반… 현실은 '승자 독식' 딴 판
친서민 중도실용(2009년)→공정사회(2010년)→공생발전(2011년).
이명박 정부 3년 반은 '장밋빛 구호'의 시기였다. 출발부터 화려했다.
핵심 공약인 '7ㆍ4ㆍ7'(연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앞세워 성장을 통한 발전을 추구했다. 이를 위해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감세 등 이른바 친기업 정책을 과감히 밀어붙였다. 그러나 양극화는 심화했고 서민들의 삶은 더 곤궁해졌다.
MB노믹스의 본질에 어긋난다는 시선에도 불구, 2009년부터 친서민 기조로 선회해 상생과 동반성장 등의 구호를 쏟아냈다. 헌데 현실은 더 나빠졌다. 경제 성장의 과실은 대기업 등 소수에게 몰리고 국민 대다수의 입에선 "못 살겠다"는 한숨이 떠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추상적 개념에만 매몰된 탓이다. 전문가들은 "공생발전이 또 한 번의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갈수록 살찌는 대기업
'비즈니스 프렌들리'의 결과일까. MB정부 들어 대기업은 갈수록 덩치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17일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국내 자산순위 10대 그룹 산하 539개 제조업 계열사의 작년 매출액(756조원)은 전체 제조업체(자본금 3억원 이상 1만890개) 매출액 1,840조원의 41.1%나 됐다. 2008년 36.8%에서 크게 상승한 수치다. 이런 성장세는 주가에도 반영돼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의 시가총액(약 277조원)은 2008년 전체 주식시장의 44.5%(약 277조원)에서 2009년 46.32%(약 448조원), 지난 1일에는 52.2%(약 699조원)까지 급증했다.
문제는 재벌 기업이 부를 쌓는 과정에서 각종 편법과 반칙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말 현재 30대 그룹 총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35개 비상장사의 총 매출(18조6,372억원) 중 가만히 앉아 계열사로부터 얻은 매출이 45.6%(8조4,931억원)나 됐다. 중소기업 영역까지 마구 잠식하면서 30대 그룹 계열사수는 2005년 702개에서 지난해 1,069개로 5년 새 52.3% 급증했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2007년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사실상 폐지되면서 재벌기업의 자산과 계열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정부가 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어느 정도 용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 없는 성장 고착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지만, 투자와 고용은 오히려 거꾸로다. 지난해 상위 30대 기업의 매출은 630조원을 넘어 MB정부 출범 직전(404조원)보다 50% 넘게 성장한 반면, 고용은 10% 늘어나는데 그쳤다. '고용 없는 성장'의 전형이다.
청년실업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2분기 대졸 주취업층(25~29세)의 실업률은 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 칠레와 함께 공동 25위였다. 구직단념자와 주당 36시간 미만 일하는 불완전 취업자를 감안하면 실질 청년실업률은 20%를 넘는다. 그나마 일자리를 구한 청년층도 절반 가량이 음식점ㆍ도소매업ㆍ교육서비스 등 저임금 업종에 종사한다.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노인 일자리도 문제다. 사회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태부족이다 보니, 많은 노인들이 방범순찰, 보육도우미, 건물관리 등 질 나쁜 일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투자하면 자연스럽게 고용이 늘 것이라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고용 창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절망 부추기는 임금격차
학력별, 고용형태별 임금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비정규직 임금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8,236원으로 정규직(1만2,878원)의 57.2%에 불과했다. 중졸 이하의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6,649원으로 정규직의 70.3% 수준이었으나, 고졸(65.0%), 전문대졸(64.1%), 4년제 대졸(56.7%) 등 학력이 올라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졌다.
특히 사업장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비정규직 차별이 심했다. 5인 미만과 5~29인 사업장의 비정규직 시간당 임금은 각각 정규직의 70.6%, 72.2%였으나, 30~299인 사업장과 300인 이상 사업장은 각각 62.2%, 63.0%에 그쳤다. 대기업들이 같은 회사에서 똑 같은 일을 해도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지급하는 사내 하도급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내 재교육, 교육훈련 등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비정규직에게도 제공해 임금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박민식기자
■ MB노믹스, 이번엔 공생발전
이명박 대통령은 8ㆍ15 경축사에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공생발전'을 시장경제의 새 발전모델로 제시했다. '동반성장', '공정사회' 등 앞서 주창했던 키워드와 비슷한 개념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근본적인 구조개혁이나 정책 전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공생발전이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MB노믹스의 실체부터 불확실하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했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면 자연스레 일자리가 늘어나 중소기업과 서민에게도 그 과실이 떨어진다는 논리였다. '친재벌 정책'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감세와 규제완화, 고환율ㆍ저금리 정책,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산분리 완화 등을 적극 추진한 이유다.
그러나 결과는 함께 사는 사회와 거리가 멀었다. 대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내부자 거래 등 불공정 거래를 일삼으며 자기 배를 불리는데 혈안이 됐고,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2009년 4월 재보선에서 서민들이 여당을 외면하자, 갑작스레 '친서민 중도실용'이 경제운용의 기본방향으로 떠올랐다. 작년 6월 지방선거 패배를 전후해서는 동반성장을 화두로 대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번에 공생발전을 얘기하면서는 '탐욕경영'이란 용어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MB정부의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이 양극화 해소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많다. 대기업을 압박하는 온갖 구호에도 불구하고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는 오히려 공고해지고 있다. 이는 대기업의 독과점이 일반화한 경제구조를 개혁하거나 감세와 4대강 사업 등 핵심정책을 수정하지 않은 채, 기부문화 확산과 같이 대기업의 '선의'에만 의존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 없이 추상적인 구호만 난무하다 보니 어느 쪽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대기업을 압박하고 몇몇 정책을 손질하면 국민정서를 달래는 데에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생'과 '공정'이 실현될 수 있도록 경제의 기본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환율 정책과 부자ㆍ대기업에 대한 감세정책 포기, 출총제 부활, 금산분리 강화 등을 거듭 주장했다.
재계도 불만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이 가장 빨리 회복한 것은 대기업이 수출시장에서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대기업을 백안시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건 처음부터 이 정부에 철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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