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이 시끄럽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5일 고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국립묘지 안장을 의결한 뒤 하루 만에 국립대전현충원에 '기습 안장'을 한 게 발단이 됐다.
육군사관학교 17기 출신인 안씨는 5공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혐의 등으로 1997년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돼 복역한 바 있다. 5공 인사의 국립묘지 안장은 고 유학성 전 의원 이후 두 번째다.
5ㆍ18 관련 단체를 비롯한 각종 시민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송선태 5ㆍ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안현태의 국립묘지 안장은 국립묘지에 묻힌 애국 인사에 대한 능욕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국가보훈처가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에는 결격 사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가보훈처는 "안씨가 실형을 살기는 했지만 1998년 복권됐으며, 1968년 화랑무공훈장을 받는 등 국가 안보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는 친일 논란이 있는 백선엽 장군 역시 사망 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라며 일부 단체가 '친일과 반일' '독재와 민주'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찬성
국립묘지 현충원에는 국가원수와 국가에 현저하게 기여한 유공자, 그리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열사들이 묻혀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안현태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대전 현충원 안장에 대해 5·18유관단체들은 그가 5공비리 인사였다는 점을 거론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백선엽 장군의 경우 사망 후 서울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는데 대해선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친일파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안현태는 이미 복권되었고, 1965년 3월 베트남에 파병돼 1년 만에 중위로 월남은성훈장과 월남1등명예훈장을 타면서 국위를 선양했다. 또 1968년 1ㆍ21사태 때 기동타격대로 무공을 세웠고, 1974년 특전사 대대장 시절부터 현재까지 부하 유가족 7명을 보살펴왔다. 이번 논란도 이들 유가족이 "안현태와 같은 사랑을 몸소 실천한 애국자를 현충원에 안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탄원서를 제출한 게 결정적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안현태가 베트남전 참전과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을 인정한 안장심사위원회의 결정은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백선엽은 젊은 시절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간도특설대에 배치돼 팔로군과 동북항일부대를 토벌하는 임무를 맡았고 중위로 해방을 맞이,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면서 '친일파' 딱지가 붙었다. 그러나 백선엽은 김일성이 통치하는 북한 공산체제를 탈출해 대한민국에 귀순했다. 또 창군의 주역이며 1948~49년 빨치산 소탕과 숙군 작업에 큰 공을 세웠다. 만약 그런 일을 하지 않고 6·25남침을 당했더라면, 국군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특히 백선엽은 한국군의 평양 최초 입성, 다부동 전투의 영웅이다. 백선엽의 현충원 안장 결정은 좌익폭동과 6ㆍ25남침으로 인해 풍전등화와 같았던 대한민국을 구했기에 정당한 것이고, 그 공적은 만군 시절의 과오를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백선엽을 친일파라고 매도하는 인물들은 6ㆍ25 당시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반문하고 싶다. 민중사관에 심취한 좌편향 인물들에게는 전쟁영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 훌륭한 지휘관이 없는 군대는 오합지졸임을 세계전쟁사는 웅변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도 영국 식민정부 치하에서 버지니아 민병대에 장교로 근무하다가 영군군 휘하에서 배운 군 경험이 훗날 독립전쟁을 지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술회했다. 만약 워싱턴을 친영파라고 손가락질한다면, 누구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일생에 걸쳐 종합적으로 공정하게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불행하게도, 친일파 청산의 핏대를 올리는 시민단체는 친북ㆍ종북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폄하ㆍ부정하면서 대한민국 초대정부를 이끈 이승만은 '친일파 대통령'이라는 인식을 가진 자학사관의 소유자들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역사는 만인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자주, 민주, 항일, 민족 등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여 절대선으로 올려놓고 역사 해석을 독점, 타인을 인격적으로 테러하려 한다. 해방 이후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서 '친일과 반일' '독재와 민주' '불의와 정의'라는 이분법적 척도로 마녀사냥을 하면서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려고 난리법석들인가? 대한민국이 한가로운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바다가 외적을 막아주는 천연의 지정학적 환경이라도 갖추고 있다고 착각하는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리겠다는 심오한 '베트콩식 책략'의 발상에서 나온 것인가?
1948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누가 지켰는가? 국군이다. 국군의 국가에 대한 자기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유와 풍요를 어떻게 누릴 수가 있었겠는가. 6ㆍ25전쟁영웅과 호국의 장군을 인민재판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뒤흔드는 폭거이자 일종의 인격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충원 안장 반대를 보면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 자식, 부모를 차버린 배은망덕한 자식의 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개운치 않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교수· 자유회의 공동대표
● 반대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국립묘지 안장 이후, 국민들의 분노는 심각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애국선열과 호국용사, 민주영령을 모욕하고 능멸하는 행위라는 충고를 하다가 국립묘지 내에 독재자 묘역, 권력형 비리자 묘역, 친일파 묘역을 별도로 만들자고 목청을 높이더니 이제는 아예 역사 쓰레기 매립장이라며 국립묘지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대전의 장군묘역에 묻히면서 안씨는 그간에 가려졌던 국립묘지 안장 실태와 심의 과정, 관련법의 문제점 등을 만천하에 드러나게 했다. 그 점만은 공이 크다. 안씨의 국립묘지 안장 불가 사유는 크게 4가지로 지적할 수 있다.
첫째, 안씨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아니다. 국가보훈처와 일부 언론은 현재 관련법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안씨는 1996년 공무원으로서 특가법상 뇌물수수, 뇌물방조 혐의로 2년6개월의 실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고 따라서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3항의 내용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될 수 없다. 이에 대해 보훈처는 안씨가 베트남 파병으로 국위 선양을 한 점,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대통령 경호실장으로서 국가안보에 기여한 점을 고려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법률을 억지로 외면한 강변일 뿐이다.
둘째, 안씨에 대한 사면복권이 국립묘지 안장 자격 회복은 아니다. 안씨는 1997년 잔형 집행 면제, 1998년 복권됐다. 하지만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동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사면법,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어디에도 사면복권되면 국립묘지 안장 자격이 되살아난다는 명문규정이 없다. 사면법을 자세히 보면 사면은 죄를 범한 자에 대한 형의 언도의 효력 상실, 공소권 상실, 형의 집행 면제이고 복권 역시 형의 효력으로 상실, 정지된 자격을 회복시킬 뿐이다. 1981, 86년에 내린 대법원의 판례에도, 형의 선고를 받은 자가 특별사면을 받아 형의 집행을 면제받고 이후에 복권이 되더라도 형의 선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고 명백히 판결하고 있다. 차제에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발생한 중대 인권침해 사건, 국가폭력 사건, 권력형 비리 사건 등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된 자에 대해 사면복권 여부와 관계없이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거나 관련 법률의 개정이 요구된다.
셋째, 안장 심의의 형평성을 상실한 결정이었다. 과거 안장 심의 대상이 국가유공자 일지라도 상습 도박, 무고죄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거나 사기죄, 횡령죄 등으로 징역형을 받았다면 안장 대상에서 제외시켜온 심의위원회의 이번 안장 결정은 한마디로 고무줄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특히 15명 심의위원 중 8명이 고위공직자이고 7명이 정부에서 위촉한 민간위원인 것을 고려하면 유족의 뜻보다는 정부의 입장이 우선됐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안씨는 서면의결 대상이 아니다.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9조에는 회의에 부치는 안건의 내용이 경미하거나 회의를 소집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에는 서면으로 의결할 수 있다는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안씨가 경미한 심의 대상인가. 하나회 회원이며 천문학적인 5공 비자금 조성에 앞장선 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 서면 심의 대상이라면 납득할 만한 국민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 같이 안씨의 안장 결정은 국립묘지의 설치 목적을 위협하고 있다. 친일 언론인 서춘처럼 안장 결정 취소 청구 소송에 패한 뒤 이장하지 말고 망자의 명예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하루 속히 안씨는 이장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보훈처가 군사기습작전을 연상시키는 안장 심의와 결정을 위법행위가 아니라 자유재량행위로 인식한다면 이제 대한민국의 국립묘지는 더 이상 국가사회에 공헌한 위훈과 충의를 역사적으로 기리고 선양할 수 없기에 국립묘지 관련 업무는 기속재량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돌아가신 애국지사를 마음 편히 모실 수 있도록 국립묘지 안에서나마 친일의 오욕이 정화될 날은 언제인가. 대전과 서울을 오가는 어느 살아있는 노병의 안장 소식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송선대 5·18기념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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