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협상의 성패는 협상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달려있다."
17년간 남미와 중동지역에서 납치범들과 협상을 벌여 한번도 인질 구출에 실패한 적이 없는 협상전문가 벤 로페즈(가명)가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밝힌 협상비결이다. 종종 소말리아 해적에 선원이 납치되는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페즈는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무장단체와 협상을 벌였던 그는 그 나라 말을 쓸 줄 아는 대리인, 종종 인질범의 가족을 내세워 극본을 써주고 협상을 하도록 했다.
그는 "납치범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면 협상은 실패한다"고 말한다. 납치범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당해야 할 부담이 커지고 일이 잘못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한정 협상을 끌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 납치범을 밀어붙일 것이냐는 그 때 그 때 판단해야 할 문제다. 로페즈는 적절한 심리적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지역적 차이는 감안해야 하는데, 남미에서는 인질을 구출하는 데 수개월 또는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평균 수 주일 내 해결된다.
협상의 중요 변수인 몸값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납치범들이 활용할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 로페즈는 "납치범들이 제시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된다고 해도 쉽게 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실제 순순히 몸값을 주고 풀려난 인질 중에는 동일범에 의해 다시 납치된 사건이 많았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정신병원에서 심리상담가로 일했다. 1994년 콜롬비아에서 인질구출 협상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후 이 분야의 경력을 쌓아왔다. 그를 찾는 고객은 정부, 법률회사, 다국적기업, 개인 등으로 다양하다. 전세계 어디든 요청 후 24시간 이내 현장에 도착해 극단적 종교단체나 범죄자 등 납치범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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