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게 대중음악 가수에겐 득보다 독이 되는 세상이다. 데뷔 17년이면 그런 세태를 알 법도 하건만 그는 여전히, 꿋꿋하게 말한다.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때 자유를 느껴요." 그런데도 이 남자, 대중이 바라는 '나는 가수다' 섭외 1순위를 다툰다.
최근 4년 만에 정규앨범 3집 'Why we fail'를 발표한 싱어송라이터 이승열(41) 얘기다. 1994년 한국 모던록에 한 획을 그은 밴드 유앤미블루(U&me blue)로 데뷔한 그는 2003년 첫 솔로 앨범 '이날, 이때, 이즈음에'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해왔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지만, 대중적인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TV 출연을 거의 안 하는 탓에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조차 흔치 않다. 12일 서울 논현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열은 '음악적 성공'을 사뭇 다르게 정의했다. "앨범 판매량 등의 수치로 가늠되는 게 아니에요. 제가 음악을 통해 이야기할 게 있고, 그걸 기다려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친밀한' 사람들이 많다는 게 중요하죠. 제가 자신 있는 것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인생은 짧아요."
'나비 하나가 떨어진다/ 날개짓 하다 멈춘 걸까/ 달빛 속에서 살아나라/ 하얀 날개여….' 지친 삶에서 탈출구를 향한 갈망을 담은 3집 타이틀곡 '돌아오지 않아'는 이승열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두터운 목소리가 쓸쓸한 어쿠스틱 기타와 오르간, 드럼, 클라리넷과 어울리며 듣는 이의 깊은 마음 속까지 울린다. "제 음악이 우울하고 어둡다고 해요. 그게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20년 전 이민을 떠나 정착한 뉴욕 브룩클린은 웨인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것처럼 우울한 느낌의 동네예요. 제가 다닌 뉴욕주립대가 있는 빙헴턴은 1년에 300일 넘게 흐리죠. 제게 블루스의 우울한 정서가 느껴진다면 그런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이번 앨범에는 총 12곡이 담겼는데 블루스와 사이키델릭, 포크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한국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가 참여한 '그들의 블루스'를 비롯해 "디귿의 단단함이 또렷이 담겨져/ 되게 어울리는 외자의 그 이름/ 넌 알고 있지 탐욕이란 걸/ 너를 향한/ 끈끈한 눈빛들.'('돈'), '이곳에서 축복이란 오래 참는 마음이겠지/ 울면서 노래하는 간절함이여.'('너의 이름') 등 어느 것 하나 이승열의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없다.
"음악적 영감에는 증오까지는 아니어도 어떤 대상에 대한 적당한 미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제가 사람들과 소통을 잘 못하니까, 음악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것 같고요."
그렇다고 그가 좌절이나 절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앨범 제목을 'Why we fail'로 지은 이유에도 그런 의지가 담겨있다. "누구나 실패를 해요. 하지만 그 경험들로 인해 더욱 단단해지고 계속 도전할 수 있어요. 그 자체로도 삶은 가치가 있는 거잖아요. 고독하지만 희망적이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인터뷰 내내 이승열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청바지에 단추 2개를 풀어 헤친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 떡진 머리를 하고 나타나서는 "아침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가사가 시적이다'고 말하자 "욕 먹지 않을 만큼 훔쳐오는 것도 있다"며 웃었다. "'너의 이름'은 마종기 시인이 자신의 어느 시에서 이슬람교도들이 모스크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모습을 '울면서 노래한다'로 표현한 데서 영감을 얻었어요. '돌아오지 않아'는 17세기 일본 거렁뱅이 시인이 지은 하이쿠에서 세상을 등지고 싶은 마음을 나비가 날아가는 모양으로 표현한 것에서 영향을 받았죠. 그렇다고 다 빌려온 건 아니에요. '돈'의 가사들은 제 나름대로 고민해 만든 거죠."
그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25일부터 9월 24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단독콘서트를 연다. "공연장 한 가운데 무대가 설치돼 관객들이 저희를 에워싸고 보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저를 비롯한 가수와 밴드들은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우리끼리 얼굴을 보며 노래해요. 뭐랄까, 연습실에서 리허설 하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승열의 음악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관객들과 즐기고 싶은거죠."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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