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약이 쏟아지는 제약업계에 파란을 일으킨 약이 있다. 바로 한국MSD에서 내놓은 당뇨병 치료제 '자누비아'다. 2008년 12월에 시판된 이 약은 2009년 매출 200억 원을 기록했으며 300종이 넘는 당뇨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2위에 올랐다. 지난해 매출은 100% 상승한 400억 원.
실적도 실적이지만 이 약이 주목 받는 이유는 발매 전부터 국내 주요 대형병원들이 앞으로 나오면 처방하겠다고 미리 약제 목록에 올려 놓았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어서 이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란과 이변을 일으킨 자누비아의 뒤에는 이 약의 영업을 총괄한 오소윤(37) 한국MSD 본부장(당뇨 및 심혈관계 사업본부)이 있다. 10일 만난 그는 "보통 약 값이 결정 된 다음 4~6개월 동안 영업을 해야 병원들이 약제 목록에 올린다"며 "그런데 자누비아는 가격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서 병원들이 약을 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비결은 오 본부장이 이끄는 영업팀의 활약에 있다. 제약업계 영업팀은 술이 세기로 유명하다. 관행 상 어떤 업종보다 술과 골프 접대 등 몸으로 부딪치는 영업이 많다. 그런데 오 본부장은 이 같은 관행을 깨뜨렸다.
오 본부장은 팀원들에게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을 것, 10가지 관심사 중 상대방이 원하는 것 1,2개를 골라 밀어 붙일 것, 골프나 술 접대가 아닌 작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책 선물을 할 것 등을 조언했다.
이처럼 독특한 영업 전략은 국내 제약 영업의 여성 1세대인 그 만의 경험이 녹아 있다. 1998년 연세대 생물학과를 나온 그가 제약 회사 영업을 택했을 때만 해도 제약 영업은 남성들의 세계였다. 그는 "여성은 안될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깨보는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며 웃었다.
종갓집 며느리이자 두 아들의 엄마인 오 본부장은 술과 골프를 할 줄 모른다. 대신 남성들이 갖추기 힘든 여성의 감성을 영업에 적극 활용했다. 그는 "영업 대상인 의사들의 부인, 아이들에게 다가갔다"며 "그들에게 선물할 책을 골라주는 등 여성 특유의 세심함으로 신경을 쓰니 좀처럼 열리지 않던 의사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비법을 공개했다.
그가 생각하는 영업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는 "설득의 핵심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대의 생각을 빨리 알아채고 그것을 맞춰주는 것"이라며 "같은 제품도 의사마다 알고 싶어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 맞추려면 제품 공부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오 본부장은 자누비아 영업을 위해 특별 훈련을 실시했다. 그는 "10명의 영업 팀이 3개월 동안 수험생처럼 회사 내 전문가들에게 수업을 받고 시험을 봤다"고 전했다.
오 본부장은 한국MSD 입사 3년 만인 2001년 '사내 올해의 영업인 상' 동상을 받았다. 한국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일했던 2006년에는 심혈관 치료제 '크레스트'의 영업을 맡아 역대 심혈관계 사업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2007년 6월 한국MSD 재입사 후에 프렌차이즈 상 2회 수상, 프레지던트 어워드 2회 수상 등을 기록하며 '영업의 달인'으로 떠올랐다.
현재 국내 제약업계의 영업 분야에서 여성 인력은 절반이 안 된다. 그는 "여성들이 영업을 하고 싶어도 화장품, 생활용품 말고 딱히 할 분야가 많지 않다"며 "여성 특유의 감성과 설득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분야가 제약"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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