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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재인, 운명에만 맡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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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문재인, 운명에만 맡길 것인가

입력
2011.08.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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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한민국 군대에 이등병 면회 가면서 음식 대신 꽃을 들고 간 사람은 아내밖에 없을 것이다."

한창 뜨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자서전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그는 이란 책에서 공수부대에서 군복무를 할 때 면회를 왔던 여자친구의 얘기를 썼다. 그는 "당시 아내는 먹을 건 하나도 가져오지 않고 안개꽃만 한아름 들고 왔다"고 소개했다.

자서전 전체에 흐르는 큰 기조는 '운명론'이다. 같은 대학 출신인 아내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운명으로 해석했다. 그는 "나는 아내에게, 내가 경희대에 가게 된 건 오로지 당신을 만나기 위함인가 보다고 대답했다"고 썼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에 있는 '운명이다'란 표현을 소개하면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도 마치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맡게 된 데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 따른 불가피한 역할 떠맡기로 설명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물려받게 된 데 대해서도 "결국 운명처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자서전 마지막에도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썼다.

연말까지는 대선 출마 결단해야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숙제가 '복지 국가'와 '진보적 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면 문 이사장은 이런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과연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아니면 정권교체에 기여하는 불쏘시개나 야권의 대선후보 경선 흥행을 돕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에 머물 것인가. 요즘 문 이사장의 지지율이 야권의 선두로 급부상하자 이 같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문 이사장은 10%가량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야권 내부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조사에서는 문 이사장이 손 대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대선 출마 문제에 대한 문 이사장의 답변은 '안개 화법'이다. 그는 "정권교체가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일까 고민 중"이라는 식으로 답하고 있다. 측근들의 답변도 비슷하다. "어느 쪽으로 마음을 굳히지 않았다. 계속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문 이사장이 나서야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대선에 나설 수도 있다."

문 이사장은 대선 출마에 대해서도 '운명론'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정치 상황과 지지율 추이를 지켜본 뒤 결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늦어도 내년 대선(12월19일)을 1년 앞둔 올 연말까지는 출마 여부에 대해 결단하는 게 도리다. 이번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대부분의 주자들이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힌 상태가 됐다. 박근혜 손학규 김문수 정몽준 정동영 정세균 등이 직간접적으로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주자들이 대선 1년 6개월 전까지는 출마를 선언한다.

꽃가마 기다리면 페이스메이커

문 이사장이 대통령 꿈을 꾼다면 지금부터 국가 비전과 집권플랜 등을 만들어가야 한다. '꽃가마 태우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그런 자세로 임하면 잠재적 주자로만 거론되다 대선 무대에 오르지 못한 고건 정운찬 전 총리처럼 페이스메이커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번 책에서 진보세력의 집권플랜 준비 부족을 지적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자서전에는 과거사는 있지만 미래 비전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청년실업과 빈곤층 확대의 원인과 해법 등은 들어 있지 않다. 대선 출사표를 던지려면 이런 주제들에 대해 답을 마련하고 내놓아야 한다. 대선 레이스에서 결단하지 않은 사람에게 꽃부터 들고 오는 사람은 없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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