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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8개월, 텃밭이 흔들린다-민심 기행] (4.끝)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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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8개월, 텃밭이 흔들린다-민심 기행] (4.끝) 충청

입력
2011.08.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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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과학벨트에 상처 "선진당에 실망… 한나라는 말할 것 없고"

충청 민심이 심상치 않았다. 말을 아꼈지만 물밑에서 요동치는 민심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세종시 추진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등 굵직한 국가 현안으로 시달렸던 민심은 이미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여기에 지역경제 침체 등이 맞물려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자유선진당에 대한 섭섭함도 함께 배어 나왔다.

내년 4월 총선을 8개월 앞두고 11, 12일 기자는 대전과 충남, 충북을 돌면서 민심의 소리를 들었다. 이를 통해 어느 정당도 깃발을 꽂지 못하고 있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의 형세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야 총선 표심의 윤곽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지역 주민들의 얘기였다. 과거에도 자유민주연합과 자유선진당 등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선거 막판에 바람을 일으킨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충청 민심의 악화는 오래 됐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충청 주민들도 대놓고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세종시와 과학벨트 추진 과정에서 생긴 앙금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대전역에서 만난 자영업자 윤모(60)씨는"세종시나 과학벨트나 줄 것처럼 해놓고 (중간에) 안 주려고 한 것을 보면 진짜 우리를 우습게 본 거쥬"라면서 "한나라당을 좋아한다는 게 기자 양반은 말이 된다고 생각해유?"라고 말했다. 충북 청원의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 인근에서 만난 60대 택시기사도"세종시를 묵사발 만들고…, 기껏 한다는 게 있는 놈 정치지 없는 놈 정치유?"라고 반문하면서 서운함을 드러냈다.

세종시나 과학벨트 입지 예정 지역 주민들의 민심은 더욱 가혹했다. 세종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에서 만난 주민 강모(52)씨는"세종시를 마지 못해 추진하는 것처럼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공사 진척도 더디니 그나마 한나라당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다 돌아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 입지 예정지인 대전 유성에서 만난 최모(46)씨는"과학벨트 예산이 깎인다느니 하는 말이 또 나오는 걸 알고 있느냐"고 반문한 뒤 "정부가 이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지명직 최고위원 두 자리를 모두 충청권에 주려고 했던 것도 결국 또 표만 받아 먹기 위한 쇼가 아니고 뭐유"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선진당에 대한 실망도 확산, 그러나 내년 표심은 모른다

충청권 기반 정당이라고 자부하는 자유선진당에 대한 평가도 싸늘했다. 세종시 등 충청권 현안 해결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제대로 한 게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대전역에서 만난 50대 택시기사는"경기가 안 좋으니까 한나라당 싫어하는 건 당연하다고 쳐유…그래도 지역을 위해 뭔가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선진당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시유"라고 섭섭함을 표시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연합의 통합 추진에 대한 시각도 곱지 않았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만난 40대 상인은"(통합을 해 봤자)그 밥에 그 나물 아닌가유"라며 "그래 봤자 또 시늉만 하다 결국에는 뿔뿔이 흩어질 것 아니유"라고 말했다.

충남보다 더 낙후된 충북 지역에서도 선진당의 역할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오모(52)씨는"선진당은 충청권을 대표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충북에서는 손을 놓은 지 오래됐다"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충남당이라고 해야 충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민심이 내년 총선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의견이 많았다. 대전역에서 만난 주부 김모(58)씨는 "그래도 내년에 가봐야쥬"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 힘 있는 사람 밀어야 한다고 외치다가도 막상 투표장 들어가면 고향 사람 찍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충남 천안 백석산업단지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시민 이모(68)씨도"주변에 한나라당 좋다고 하는 사람 별로 없어도 최근 천안에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장이 나오지 않았느냐"며 "충청도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충청을 대표할 새 인물 찾아야

선진당에 대한 실망감은 자연스레 세대교체 얘기로 이어졌다. 김종필 전 총리(JP)가 정계에서 떠난 뒤 새롭게 충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에서 만난 주민 신모(59)씨는 "김종필씨가 후계 양성을 제대로 못한 게 지금 이렇게 휘둘리는 모습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며 "이회창 심대평에 대해 기대하는 정서도 남아 있지만 지금이라도 선진당이 세대교체를 해서 충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전 유성에서 만난 학원강사 이모(38)씨는"충청을 대표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선거 때 얼굴 비치는 것 빼고 한 게 뭐가 있었느냐"고 말했다. 대전 중앙시장에서 꽃가게를 운영하는 서모(62)씨도"능력 있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지역의 대표 인물로 키워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만난 40대 주민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영남, 호남에 기반을 둔 지역 정당들이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충청권에서 합리적 노선을 가진 제3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싫어도 박근혜는 선호

한나라당에 대한 민심은 좋지 않았지만 대통령감을 묻는 질문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는 주민들이 많았다. 대전역 인근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김모(59)씨는"우리가 없이 살았을 때 청와대 안방마님 역할을 한 박근혜 전 대표가 어려운 서민 살림을 이해하고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50대 여주인은"미용실을 찾는 50대 이상 단골 주부들은 대부분 박 전 대표를 지지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야권 인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는 주민들도 일부 있었다. 천안에서 만난 대학원생 유모(27)씨는 "정치적 때가 덜 묻은 문재인씨가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할지 주목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고 말했다.

대전ㆍ천안ㆍ아산ㆍ연기ㆍ청주= 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 충청권 총선 투표의 두 패턴

충청권의 역대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 싹쓸이'와 '분할 구도' 라는 두 가지 패턴이 반복돼 왔다. 권력의 변방에 있다고 판단될 경우 충청지역 기반 정당에 몰표를 던져 존재감을 부각시키는가 하면, 일단 집권세력에 편입된 이후엔 어느 정당의 독주도 허락하지 않았다.

1995년 3월 김종필(JP) 당시 민주자유당(민자당) 대표는 민주계의 사퇴 압력에 반발해 탈당한 뒤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만들었다. 급조된 정당이었지만 "충청도가 핫바지냐"는 선거구호는 위력을 발휘했다. 자민련은 창당 직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충청권 광역단체장 3석 모두와 강원지사를 휩쓸었다. 이듬해 총선에선 충청권 28곳 중 24곳에 자민련 깃발을 꽂았다. 민자당의 후신인 신한국당은 당시 고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충청권 유권자들은 2008년 총선에서도 이 지역 출신인 이회창, 심대평 의원 등이 손을 잡고 만든 자유선진당에도 14석을 몰아줬다. 거슬러 올라가면 1988년 총선에서 JP가 주도해 만든 신민주공화당은 27석 중 15석을 차지했다.

반면 지역 맹주가 집권당과 연이 닿아 있을 경우엔 표 쏠림 현상은 옅어졌다. JP가 집권당인 민자당 소속이었던 92년 총선에서 민자당은 전체 28석 중 15석를 얻었다. 당시 민자당이 3당 합당으로 이루진 거대 정당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 국민당은 6석, 민주당은 3석, 무소속은 4석이었다.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이후 2000년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련은 11석에 얻는 데 그쳤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8석, 4석을 차지했다.

충청권 유권자들은 중앙정치에서 소외됐다고 판단되면 지역 정당에 표를 몰아줘 관심을 유도했다. 일단 지역연합 등으로 정권 창출에 성공한 뒤에는 '황금 분할'을 통한 견제를 택했다.

지역 현안을 1순위로 생각하는 철저한 '실용주의 투표'도 특색이다. 2004년 탄핵 바람과 행정수도 추진 열풍으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뒀다. 하지만 4년 뒤 선거에서는 다시 새로운 지역 정당인 자유선진당의 손을 들어줬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충청권 유권자들은 두 가지 패턴 중 어떤 선택을 할까. 결국 누구를 '지역의 대변자'로 생각하느냐가 총선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은 "한나라당엔 반감을 가지면서도 '지역 이익 대변자'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꼽는 정서가 통할지, 민주당 소속 안희정 충남지사와 같은 미래의 지역 대표주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갈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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