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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ㆍ유럽 재정위기 복지 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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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ㆍ유럽 재정위기 복지 때문이 아니다

입력
2011.08.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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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국방비 10년새 2배 이상 증가… 경제 발목 잡아

재정위기(과도한 국가부채)가 미국과 유럽 경제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선진국들이 정부살림을 적자로 망쳐놓은 주범은 과도한 복지지출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면밀히 살펴 보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먼저 미국. 14조2,940억달러(약 1경2,450조원)의 정부부채로도 모자라 최근 극심한 진통을 겪으며 부채상한선을 더 올렸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연방정부가 1달러를 쓰려면 40센트를 차입해 충당해야 할 정도로 나라 살림이 헤프다.

빌 클린턴 정부 2기까지만 해도 흑자를 달성했던 미국의 재정에 이렇게 큰 구멍이 난 것은 2001년 테러와의 전쟁 개시 이후 국방예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미국 국방비 지출은 6,980억달러에 이른다. 2001년부터 2009년 사이 연평균 국방비 증가율(7.4%)은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평균(1.6%)의 4배가 넘는다. 그 결과 1999년 3,000억달러에 못 미쳤던 국방비가 10여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은 지난해 전세계 국가가 쓴 국방비의 42.8%를 쏟아 부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나 리비아 전선에서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대 세계제국의 쇠락 원인을 국방비 지출 증가에서 찾았던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의 명제가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느슨한 연금제도 등 무분별한 복지예산 지출이 원인 중 하나인 것이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소득수준이나 국가경쟁력은 하위권이지만, GDP 대비 복지 지출은 21.3%(OECD 평균 19.2%)로 매우 높다. 하지만 복지지출 증가 말고도 ▦높은 지하경제 비중(GDP의 24.7%) ▦유로화 강세에 따른 수출경쟁력 약화 등이 위기에 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때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불리며 호황을 누리다가 구제금융을 받은 아일랜드의 재정위기는 부동산 거품이 보다 주요한 원인이다. 아일랜드 주택가격은 1995년부터 2007년까지 4배 이상 뛰었으며 여기서 발생한 부실이 금융부문으로 전이됐고 금융부실을 떠받치느라 재정 건전성이 악화됐다.

국가부채가 GDP의 93%에 이르는 포르투갈은 성장 잠재력 저하가 재정위기로까지 이어졌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포르투갈 노동생산성은 독일이나 스페인의 60%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90년대 중반 3%대를 유지하던 잠재성장률(모든 생산자원을 활용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은 2000년대 들어 1% 중반대로 추락했다.

올해 국가부채가 GDP의 20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도 저성장 때문에 빚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로 꼽힌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1991~2010년 일본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1.0%. 일본은 세계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이지만 복지 관련 지출 비중은 GDP의 18.7%에 불과해 OECD 평균(19.2%)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사례를 볼 때 나라마다 재정위기를 일으킨 정치·경제·역사적 상황은 제각각이다. 복지지출보다 오히려 저성장이 세수악화와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더 중대한 변수로 볼 수도 있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 진영은 재정위기 확산을 빌미로 복지지출을 줄일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미국 공화당이 이번 부채협상에서 증세 없는 지출 삭감을 관철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정치적 구호로써 파괴력을 가질지는 몰라도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사태를 오도할 수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억만장자들의 쿠데타'라는 칼럼에서 "증세 없이 정부지출만 줄이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돈을 부자에게 갖다 주는 격"이라며 "몇몇 억만장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지자들을 매수하는 등 정치과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스웨덴은 복지도 재정도 든든

유럽을 휩쓸고 있는 금융위기에서 다소 비껴간 국가가 있다. 우리가 복지국가의 이상적 모델로 여기는 스웨덴이다. 복지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출이 재정위기를 불렀다고 주장이 있지만 스웨덴은 나라살림을 거덜내지 않고도 얼마든지 품질 높은 복지 보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단적으로 스웨덴은 재정도 복지도 든든한 국가이다. 지난해 스웨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33.7%로 유럽연합(EU)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았다. 반면 복지관련 예산은 GDP의 27.3%를 차지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경제성장률도 5.7%나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변화하는 복지'로 요약할 수 있다. 시대 환경에 맞춰 부단히 복지정책이 변천했다는 의미다. 스웨덴은 작은 정부와 자유경쟁 원리를 활용한 덕분에 1950년대에 유럽 제1의 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 때부터 복지 확대를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근로자의 경영참여 허용 등 노동 시장에 각종 규제가 도입됐다. 필요한 재원은 높은 법인세와 기업의 사회보장세로 충당했고, 국민 부담도 급증해 90년대에는 조세부담률이 50%를 훌쩍 넘어섰다.

스웨덴에서도 고부담, 고복지의 병폐가 90년대 초 경제위기를 겪으며 드러났다. 80년대 세계 경제호황과 맞물려 금융시장을 개방한 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스웨덴은 금세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다.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금융시스템이 붕괴되자 정부는 대대적인 세제개혁에 나섰다. 50%에 달했던 기업 법인세를 절반으로 낮추고, 상속세와 부유세를 폐지하는 등 일하는 인구의 비용 부담을 덜어냈다. 세수 감소→복지혜택 축소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스웨덴은 복지국가의 근간까지 흔들지 않았다. 가령 병원, 약국 등 일부 기관을 민영화하기는 했지만,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면 여전히 무상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스웨덴의 복지지출 비중은 93년 38.6%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3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기본적인 사회혜택을 보장하고 있기에 금융위기가 닥쳐도 국민 저항은 거세지지 않고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 유로존 재정 줄이며 청년 5명중 1명이 실업자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유럽 각국은 고육지책으로 재정 씀씀이를 줄여야 했지만 최근 영국 폭동을 비롯한 격렬한 시위로 이어지면서 사회불안을 낳고 있다. 긴축재정으로 공공분야의 일자리마저 줄어들어 높은 실업률이 해소되지 않고, 빈부격차 심화, 고물가 등 생활고가 결합된 결과다.

3월 포르투갈에 이어 스페인, 그리스에서도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며 부상자가 속출했다. 안보우선주의 국가 이스라엘에서도 치솟은 물가와 높은 집세 등 사회ㆍ경제 문제에 항의하는 시위가 중산층 전체로 확산되며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유럽의 시위는 양상과 성격이 갖가지지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잃은 채 표류하는 젊은 층들이 중심에 있다는 지적이다. 스페인을 기점으로 퍼져나간 시위를 가리키는 인디그나도스(indignadosㆍ분노한 시민)의 핵심에는 젊은이들의 일자리 문제가 있다. 최근 유럽연합(EU) 통계국 유로스타트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15~24세 청년 5명 중 1명이 실업 상태(실업률 20.3%)다. 특히 스페인과 그리스의 경우 청년실업률은 각각 45.7%와 38.5%로, 고용상태가 좋은 네덜란드(7.1%)나 오스트리아(8.2%)의 5~6배나 된다. 로이터통신은 "경제위기가 젊은 이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며 "재정지출 삭감이 전세계적인 현상인 지금 폭동 사태는 어디에서도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재정지출 삭감정책이 지속될 수 있겠느냐며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기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태 진압을 위해 경찰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경찰예산 20% 삭감 입장은 철회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사회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경제부양 정책이 필요하지만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현재로서는 여유가 없는 셈이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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