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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과학자가 본 조선의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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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과학자가 본 조선의 성리학

입력
2011.08.1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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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은 성리학에 심취한 학자와 관원들이 이성계와 이방원을 중심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이데올로기에 바탕한 새로운 정치권력을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정도전 등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상업을 중시한 고려의 정책이 토지와 노비가 사원과 세습적 귀족집단에 집중됨으써 사회안정과 정치기강의 손상 및 만연된 부패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이 추구한 개혁은 고려를 부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과전법을 실시하여 사원으로부터 몰수한 토지의 경작권을 분배한 뒤 농민들로부터 거둬들인 미곡을 사대부에게 재분배하는 도덕경제를 내세웠으며 이에 위협이 되는 상공업, 화폐유통 그리고 시장경제를 철저히 억압하였다.

이는 상업활동이 성실한 노동과 생산활동이라기보다는 탐욕에 의한 부의 창출이며 근본적인 악의 원인이 된다는 성리학의 도덕적 강령 때문이었다. 세습적 귀족세력의 기반이 혼인제도와 특히 여성의 상속권 및 높은 사회적 지위에 기인한 것이라고 본 성리학자들은 가부장적인 호주 제도를 내세워 여성의 상속권을 박탈하고 재혼을 금지하는 등 여성의 지위를 하향시킴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또한 고려의 기본 정책이었던 고구려의 고토 회복과 자주성은 국방비 절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명에 대한 사대주의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발생한 태종과 세조의 왕위 찬탈과정이 가져온 유혈사태와 정치적 보복은 이후 왕위 계승에 정치적 파란을 가져왔으며, 이러한 갈등은 패배한 정치집단에 대한 숙청으로 이어지는 당쟁이라는 형태를 통해 조선말까지 반복되었다. 도덕적 명분론은 음해와 모함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저열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상공업을 억압한 도덕적 경제론은 지배계층이 원하는 사치품의 조달을 위해 밀무역과 부정부패를 용인하는 위선으로 퇴색했다.

성리학의 변질은 임진왜란을 목전에 두고도 당쟁으로 인해 전쟁을 전혀 대비하지 않아 사상 유례가 없는 참화를 초래하였다. 전 국토가 황폐화되어 900만의 인구 중 200여만이 사망하고, 1,700만 결에 달했던 경작지는 전쟁 후 불과 30여만 결로 급감하여 조선말까지도 임진왜란 전의 경제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당쟁으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 정치집단과 국왕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구한말에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당파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방어의 중점을 수도권에 두느냐 청천강 이북에 두느냐로 반목하고 탁상공론만 반복했다. 심지어 김자점은 수도권 방어를 담당한 지휘부가 자신의 당파와 다르다는 이유로 청군의 침입을 목격하고도 이를 도성에 보고하지 않아 병자호란의 중요한 패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자점 등 서인세력은 인조 말년에 소현세자를 제거하고 봉림대군을 옹립하는 등 정치권력의 중심이 됐다. 효종과 헌종의 승하 후 조 대비가 상복을 몇년간 입어야 하는지 하는 예송논쟁으로 대립한 서인과 남인, 경종의 즉위를 놓고 대립한 노론과 소론은 국내외 현실을 무시한 채 당파의 이익만을 추구했다.

흥미로운 점은 제임스 팔레가 에서 밝혔듯 조선 전 기간을 통해 과거에 합격한 1만4,600명의 53%가 36개 가문에서 나왔으며 이들 가문은 신라와 고려를 지배했던 귀족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건국이념으로 택한 성리학은 도덕을 앞세웠으나 상공업과 무역을 억압하고 정치권력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면서 정적들을 제거하는 것만이 도덕적인 정당화가 되는 교조적인 이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우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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