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심리에 미국 신용등급강등까지 겹치면서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생활 풍속도도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유통상인들은 상인들대로 울상을 짓고 있다.
12일 귀금속 업체가 밀집한 서울 종로의 귀금속 거리. 대부분의 금은방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금값이 오르면 상인들이 돈을 벌 거란 생각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20년째 이 곳에서 금은방을 운영 중인 A씨는 “이런 불황은 처음이다. 손님이 아예 없다”며 미간부터 찌푸렸다. 가까운 지인의 돌 잔치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르지만 대부분 가격을 듣고 놀라 도망치듯 달아난다는 것.
그는 “3.75g(한 돈)짜리 돌 반지를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간혹 반돈 짜리 구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마저도 10만원이 훌쩍 넘는다”며 “대부분 구매를 망설이다 자기들끼리 ‘현금 10만원 주는 게 낫겠다’며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씁쓸해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반지 하나 팔지 못하는 날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8급 공무원인 이모(36)씨는 최근 가까운 지인 아들의 첫 돌 잔치 때 1g짜리 돌 반지를 건네고는 뒤통수가 한참 시큰거렸다고 한다. 5년 전 자신의 딸 첫 돌 때에는 3.75g(한 돈)을 받았는데, 현재는 한 돈 소매가가 24만원 정도로 연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기 때문. 이씨는 “사실 반 돈만 할까도 생각했는데 그 역시 10만원이 훌쩍 넘더라”며 “얇은 주머니 사정 탓에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미안해 했다.
그럼 금을 팔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까. 대부분 집에 돌반지 몇 개씩은 갖고 있을 텐데, 지금처럼 금값이 오르면 앞다퉈 팔려고 하지 않을 까. 물론 생활고에 쫓겨 금반지나 금니까지 파는 사람들은 있기는 하다. 하지만 A씨는 “금값 몇 만원 올랐다고 예물이나 돌 반지를 파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제시세와 고시가격만 오를 뿐 전반적 거래는 부진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예물수요도 줄었다. 이 곳 업주 B씨는 “순금 세트는커녕 요즘은 아예 커플링만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숨 지었다. 예비 신부인 최모(28)씨도 “반지와 목걸이는 가장 저렴한 14K로 맞추고, 나머지 예물은 양쪽 집안이 합의해 모두 생략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금이 비싸다 보니 은이 대신 뜨기도 한다. 업주 H씨는 “은은 소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으니 최근 수요가 큰 폭으로 느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인터넷 은제품 판매 사이트 등에서도 아기용 은수저를 비롯해 은에 이름을 새긴 미아방지용 목걸이, 팔찌 등에 대한 주문이 늘고 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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