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은 증권가에서 '슈퍼 갑(甲)'으로 불린다. 주식투자액 규모가 지난해 기준 69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을 '모시려' 내로라하는 증권사들이 접대를 해온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09년 12월에는 국민연금공단 직원 90여명이 한 증권사의 연수원에서 워크숍을 하면서 이 증권사로부터 숙박비, 저녁식사비, 고급 양주, 술자리 향응접대비 등 850만원 어치를 지불케 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국민연금공단 A팀장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사망 전 술자리에 한 증권사 직원이 동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접대 의혹이 일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구나 당일 술자리에 있었던 직원들은 모두 연기금의 주식투자와 관련한 실무를 맡고 있는 기금운용본부 소속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분기별로 증권사 평가를 해 운용사를 고르고 있다"며 "마음만 먹으면 순위를 조작할 수 있으니 증권사 입장에서는 잘 보이려 무조건 고개를 숙이고 접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 감사실이 이번 사건에 대해 제대로 내부 감사를 하지 않은 점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감사실은 사건 직후 동석했던 직원들에게서 상황보고를 받고 당일 술자리와 관련해 경위 조사를 했으나 서면 조사에 그쳤다. 접대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물증인 술값 영수증 제출도 요구하지 않았다.
감사실 관계자는 "직원이 사망한 사건이라서 특이점이 있었는지 경위를 알아봤다"면서도 "당일 술자리 영수증 확인이나 동석자 대면조사 등은 아직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징계를 받은 B씨를 위로하는 술자리였던 것으로 안다"며 "모텔에 투숙한 이유도 당일 비가 너무 많이 와서인 것으로 보고 받았다"고 덧붙였다.
당일 술자리에 증권사 직원으로 전해진 외부인이 동석했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
접대 의혹이 일고 있는 사안의 심각성에 비하면 미온적인 대처다. 더구나 당일 자리에 있었던 B씨는 이미 증권사 평가 조작을 방관한 혐의로 감사원으로부터 징계 대상자로 지목돼 지난달 22일 감봉 3개월의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국민연금공단은 이번 사안을 쉬쉬해 상위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핵심 관계자들조차 "회식 중 사고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거나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할 정도다.
당일 술자리에 있었던 B씨는 접대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그는 12일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접대 자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말하기가 어렵다"며 자세한 답변을 피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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