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에게 보내는 백색 묵시록"
한국일보가 창간 57주년을 맞아 파견한 그린란드 종단 탐험대가 장장 52일 동안 성공적인 탐험을 마치고 귀국했다. 홍성택 그린란드 탐험대는 최근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심각한 징후를 북극점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했다. 탐험대는 홍성택(45) 대장과 정동영(37ㆍ보석상 운영), 배영록(36ㆍKCC정공 소속) 대원 등 최종적으로 3명으로 이뤄졌고, 현지 정찰과 훈련기간 등 준비기간을 포함해 총 70여일간 그린란드에 머물렀다. 이들은 얼음과 눈뿐이어야 할 그린란드 내륙의 빙하 위에 강이 흐르고 호수가 고여있는 것을 목격했다. 빙하가 점점 줄어드는 등 기후변화의 가장 중심에 서있는 그린란드는 북극, 남극, 에베레스트 등과 마찬가지로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탐험이 매우 어려운 곳이다. 정통적 탐험 방식인 개썰매를 고집하면서 그린란드의 눈 덮인 설원을 하염없이 달렸던 탐험대에게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 대장이 대부분의 질문에 답했다.
_ 왜 탐험을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탐험을 하는 데 구구절절한 이야기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다. 어렸을 때 새벽에 눈 내린 길, 아무도 안 걸은 길을 걸었을 때의 설레는 기분을 느낀다. 동네 길을 나홀로 발자국을 내면서 걷는 기분, 저 귀퉁이를 돌면 뭔가 새로운 게 있을 거라는 생각, 그런 것이 좋다. 위험하고 힘들수록 가슴이 뛰고, 흥미로워진다. 거기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_ 홍성택 대장은 직업이 있나.
"원래 파고다외국어학원에 있었다. 엄홍길 대장과 17년간 함께 운영하다 정리하고 부평에 따로 학원 차렸다. 그리고 다시 탐험을 하기 시작했다. 파고다학원에서 직장생활 오래했고, 학원을 하면서 히말라야, 남극, 북극을 갔다."
_ 탐험가 중 존경하는 사람은.
"우에무라 나오미라는 일본의 전설적인 탐험가다. 지금도 그 사람은 일본에서 영웅이다. 1974년부터 개썰매를 타고 북극권을 횡단했다. 그는 그 시절 단독으로 알래스카의 매킨리를 등반하고, 아마존강을 뗏목으로 종단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을 동경했다. 라는 그의 책을 보면서 탐험에 빠져들었다. 또 어니스트 섀클튼도 좋아한다. 그는 남극 탐험을 하러 들어갔다가 바다가 얼어붙어 타고 있던 '인듀어런스 호'가 부서져 탈출한다. 탈출 기간만 1년이었다. 이 얘기는 라는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즐겨본다."
_ 우리나라 탐험가 중에서는.
"우리나라에 탐험가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산악인은 많다. 허영호 선배와 많은 일을 했다. 남극점과 에베레스트도 같이 갔다. 그 분의 배려심, 합리적인 면 그런 거 배울 점이 많다. 그외에도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지금은 그들은 조용하게 계신다."
_ 배영록 대원은 존경하는 분 없나.
"사실 그린란드가 첫 탐험이었다. 김영도 선생 같은 경우는 등반 기록은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 들어오는 정보나 책자를 번역하는 노력 등이 존경스럽다. 우리 젊은 세대가 알피니즘으로 돌아가서 순수하게 상업주의를 배제하는 그런 운동을 생각해볼 시기가 돌아온 것 같다. 김영도 선생은 팔순이 넘었는데도 저술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한국일보가 이끈 1977년 에베레스트 한국 초등 때 원정대장을 하셨다."
_ 정동영 대원은 탐험을 꿈꾸게 된 계기가 뭔가.
"처음 사실 산에 다닌 게 돈을 적게 들이기 위해서였다. 다른 취미생활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런데 막상 이 분야에 뛰어들고 나니 돈이 엄청 들더라. 사람이 좋아서 만나다 보니 홍성택 대장도 알게 됐다. 좋은 경험을 쌓는다는 생각으로 탐험을 한다."
_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몸을 단련하나.
"수평과 수직운동이 다소 다르다. 그린란드 탐험 같은 수평운동의 경우는 근력을 키우면서 살을 많이 찌운다. 그래야 추위에 노출되더라도 추위를 덜 타고 무난히 넘길 수 있다. 반면 등반 같은 경우는 근지구력을 키우고 오히려 지방을 줄여야 한다. 이번 에는 살찌우고 많이 먹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탐험 후 몸무게가 16kg 이상 빠졌다. 조깅, 웨이트 트레이닝, 수영 등을 많이 한다."
_ 가족들이 걱정 안하나.
"가서 아예 오지 말라고 한다. 내가 워낙 가고 싶어하니까. 1996년에 결혼했는데 주변에서 '산에 가면 쌀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대학 나와서 미친 짓 하는 놈'이라 했다. 결혼하고 산에 안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다. 집사람은 그렇게 가지 말라 하다가도 막상 가기 하루 전날에는 몸 상하지 않고 잘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탐험가면 집사람은 매일 기도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해 달라고 한다. 늘 미안하다. 애들한테도 그렇다. 한 번 나서면 정찰과 탐험 등 2~3개월 정도 ?객? 돈도 없으니 집사람이 죽을 지경이다."
_ 생계는 어떻게 하나.
"전에 있었던 학원에 조금 지분이 있다. 그걸로 겨우 버틴다. 이번 같은 경우에는 스케일이 굉장했기에 비용도 컸다. 예상만큼 협찬도 안되서 매우 힘들었고 굉장히 외로웠다. 혼자서 대장이라는 명분 아래 다 떠안으면서 가기가 너무 힘들었고, 자금 부분은 후유증이 있다. 따라서 아직 대장으로서는 탐험이 다 끝난 게 아니다. 이 문제 해결하는 게 끝이다."
_ 그린란드의 환경은 얼마나 파괴됐나.
"실제로 이번 그린란드 탐험대 경우는 범국가적, 범세계적인 탐험이다. 갔다 와서 보니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환경 피해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이었다. 우리는 이를 깊숙이 들어가서 볼 수 있었다.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그린란드가 망가지고 있었다. 북극의 핵심이 그곳이고, 북극이라는 자체가 지구 전체의 기후를 만들고 큰 영향을 끼치는 곳이다. 그린란드 내륙은 헬기로 접근하는 데도 제약이 있는데 우리가 직접 발로 뛰어서 기록했다.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 채널을 통해 기록한 것을 내보낼 것이다. 나중에 가치있는 기록으로 평가되기를 작게나마 소원한다. 이게 영상으로 나가서 북극이 저렇게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 내가 느낀 것은 기후변화가 앞으로 더 위협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_ 그린란드에도 강과 호수가 있나.
"얼음과 눈뿐이어야 할 그린란드 내륙의 빙하 위에 강이 흐르고 호수가 고여 있다. 아이스슬래시가 되어서 발이 쑥쑥 빠진다. 20만년 이상이 된 빙하가 다 녹아내리고 있다. 얼음층이 얇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지구 환경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심각하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피부로 느꼈다. 이게 영상으로 널리 퍼지면 세계인들에게 묵시록적인 경고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_ 그린란드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북극 탐험을 끝내고 오면서 그린란드에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기를 가면 어떨까 하는 설렘과 동경이 있었다. 쌍발기 트윈오터를 타고 철수할 때 봤던 그린란드의 하얗기만 한 땅에 가슴이 설??? 그린란드는 내 한계 이상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가봐야 할 곳이었다. 이번 탐험에서 새로운 루트를 가면서 10년 뒤 우리가 걸었던 곳을 다시 지나올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빙하가 너무 녹아내리고 있어서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마지막이고 곧 기록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린란드에 가보면 현실이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_ 탐험보다 후원 받는 일이 힘들다는데 처음 대장을 맡아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는 어땠나.
"정말 힘들더라. 다른 선배들은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어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일일이 이해를 구하고 타당성 이야기를 했다. 지금도 힘들다. 빚도 많이 졌다. 우리가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기업도 나서는 듯하지만 막상 협찬을 받으려고 하니 매우 인색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청했는데 잘 안돼서 후유증이 크다. 그런 것들을 끌어들이는 데 역부족이었다."
_ 디스커버리 채널에는 촬영분을 보냈나.
"일부분을 보냈는데 괜찮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 최초로 디스커버리 채널에 방영될 수 있을 것 같다. 촬영팀에서 다큐 영화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방송국들도 매우 호의적이다. 우리나라만 공유할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싶다. 나는 보잘 것 없지만 이 영상이 기록이 되고 가치있게 평가되기를 바란다."
_ 실제로 그린란드를 보니 어떤 느낌이 들던가.
"북극, 남극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린란드에는 북극과 남극의 환경, 히말라야의 환경이 다 같이 존재했다. 모든 극지 경험이 가능하다. 환경이 꾸준하게 업다운을 하는 과정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안좋았다. 눈이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어서 고도 1,200m까지 내려갔다가 3~4일씩 눈 슬러지에 갇히는 바람에 혼났다. 서서히 고도를 올려 2,400m가량 올라갔더니 개들이 체력 소모가 심하고 고소 증세로 힘들어했다. 올라가면 눈 사정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눈이 너무 드라이해서 푹푹 빠졌다. 이대로 가다간 다 조난당하겠다 싶어서 다시 내려갔다. 화이트아웃(천지가 모두 백색이 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 상태)도 위험했다. 끊임없이 바람이 남쪽에서 계속 불고 전진을 막았다. 또 의외로 따뜻한 기온도 문제였다. 영하 15~ 20도로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는데 봄ㆍ여름 시즌 들면서 낮에는 영상 28도까지도 올라갔다. 상식을 깨는 온도다. 영구빙하층의 몇십만년 된 빙하가 한여름을 맞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30cm씩 물이 녹아 있었다. 스키를 눈 위에 꽂아놓았다가 아침에 보면 깊이를 알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이 의외로 많이 힘들었다.
_ 개썰매는 타고 달렸나.
"썰매는 잘 못 탄다. 썰매?올라타면 개들도 딱 멈춰 선다. 무거워 못 가겠다고 버틴다. 개들이 뒤돌아 보면서 주저앉아 버린다. 그린란드 개는 보통 영악한 게 아니다. 거칠기도 하다. 가자면 안 가고 말을 해도 듣지 않는다. 리더 개를 두들겨 패기도 했다. '우리를 가지고 놀더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_ 남ㆍ북극과 비교하면.
"남ㆍ북극 합친 것이 그린란드 같았다. 북극은 단지 바다 위로 얼음이 언다. 환경은 약간 틀리지만 가지고 있는 특성, 즉 화이트아웃이나 이런 것들은 비슷하다. 남극은 그린란드처럼 대륙 위에 눈이 쌓여 빙하가 되어있다. 북극은 바다 위에서 영하 30~50도 그 사이를 유지한다. 2~3월에는 바다가 결빙돼 구빙이 3m, 신빙은 10~30cm 얼어있다. 얼음판끼리 붙어있다가 바람이 불면 잇따라 갈라진다. 리드(얼음 사이로 갈라져 드러난 바다)가 생기는 것이다. 이를 끊임없이 건너야 된다. 얼음판이 부딪치면서 융기가 되면 프레스 리지(얼음판끼리 부딪쳐 형성된 얼음언덕)가 만들어져 3~5m 언덕이 되는데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썰매를 끌고 계속 넘어가야 한다. 이런 게 북극의 환경이다. 그러면서 기온이 영하 35~40도로 내려가 모든 것을 얼려버린다. 아무리 드라이한 것도 아침에 나가서 10~30분만 지나면 얼어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린란드는 더웠다. 남극은 바람이 일정하게 불고 눈에 빠지지 않는다."
_ 배영록 대원은 설원을 달릴 때 어떤 느낌이었나.
"이게 눈인가 싶었다. 우리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건 오로지 눈과 하늘, 구름뿐이었다. 그리고 바람소리. 그 외에는 우리 대원과 썰매개들뿐이었다. 강렬한 햇빛이 반사됐다. 눈 사막이라 할까,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환상 같은 것이었다. 히말라야 고도 8,000m처럼 구름 위에 떠있는 느낌 같았다. 2~3일 지나니 환상이 깨졌다. 수십일을 가도 보이는 것 하나 없었다. 헬기 보급을 받기 위해 해안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면 길 잃은 새 한 마리씩 서너 번 본 적이 있다. 해안가에서 비행기가 하나 지나가도, 또 하늘의 비행기 궤적만 보아도 위안이 되곤 했다. 사람이 사는 지대와 그리 멀지 않다는 안도감이었다. 대원들도 지치고 식량은 계속 줄어들고. 개들이 하루 60~70km를 달려줄 때는 탐험 쉽게 하겠구나 했는데 지치면 하루 16km밖에 못갔다. 슬러지에 빠져서 하루 3km도 못가고 다시 텐트 치고 그럴 때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_ 탐험 3일 만에 동행 취재했던 이성원 기자가 크레바스(빙하나 눈 골짜기에 형성된 깊은 균열)에 빠졌다. 만일 그때 무슨 일이 생겼다면 탐험은 중단되는 거였나.
"조난 헬기를 불러 내보내고 탐험은 계속했을 것이다. 헬기가 못 들어오면 들어올 수 있는 지점까지 우리가 이동했을 것이다. 응급처치를 했어야 했다. 당시 크레바스 속은 깊이를 알 수 없이 시커맸다. 그 밑에까지 빠졌다면 최소 중상 이상이다. 중간에 걸렸으니 다행이다. 히말라야에서는 크레바스에 빠지면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가지고 있던 로프가 90m에 불과해 200m이상 떨어졌으면 구출하는 데 며칠이 걸릴 수도 있었다. 아무튼 운이 좋았다."
_ 대원끼리 서로 로프를 연결하지 않았나.
"등반할 때는 그렇지만 이번에는 크레바스가 있을 거라 예상치 않았다. 보이는 크레바스가 아니었다. 눈에 가려진 히든 크레바스였다. 크레바스 사이에 눈이 덮여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서로 로프를 묶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운이 좋아 얼음 틈에 걸려 살아나왔다. 하늘이 도왔다."
_ 블리자드(눈보라)가 많이 부는가.
"심한 건 아닌데 끊임없이 불었다. 그럴 때는 개들이 중심을 제대로 못잡아 운행이 힘들다. 맨 앞사람은 아무것도 안보인다. 앞사람이 개를 인도해야 하지만 경험이 없으면 방향 잡기 힘들다. 착시 현상, 몽롱함 때문에 여기서 잘못 갇히면 3~4일 체력소모를 한다. 앞으로 간다고 하지만 계속 주변을 돌게 된다. 그럴 땐 정신적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 다음날도 그런 현상이 생기면 패닉이다."
_ 왜 개썰매를 타고 갔나.
"개썰매는 그린란드 전통 이동수단이다. 그 전통 이동수단을 이용한 탐험이 의미있겠다 싶었다. 북극점을 처음 탐험 성공한 피어리, 남극점을 간 아문센도 개썰매를 이용했다. 탐험의 정통성이다. 또 걸어서 가면 그린란드 이곳저곳을 탐험하기 힘들 것 같았다. 개썰매를 타면 편할 거란 생각도 했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타지 못했다. 개를 이끄는 것이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것인지 몰랐다."
_ 썰매개가 서로 잡아먹은 경우도 있었다는데.
"그린란드 개들은 우리조차 먹잇감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썰매를 힘겹게 끌다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절대 약한 모습을 안보이는 개들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이 먹이로 생각해버린다. 주춤하면 자기들끼리 뒤에서 콱 물고 나머지 개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물어서 죽인다. 개들은 쓰러지는 마지막 5분까지도 약한 모습을 안보이려 한다. 다른 개들에게 안 먹히려는 것이다. 탐험 도중 덩치 큰 개가 한번 넘어졌는데 다른 개들이 순간 물어서 죽였다. 배부터 물어뜯어서 내장부터 먹는다. 소름 끼쳐서 못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말릴 수가 없었다. 말리려 했다가는 우리도 위험했다."
_ 굶주림은 겪지 않았나.
"마지막 6일 정도는 하루 라면 2개로만 3명이 버텼다. 물 2리터 넣고 불려 겨우 배를 채웠다. 힘이 떨어져 이러다 개들의 공격을 받는 게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식량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까 하면서, 개를 잡아먹을 생각도 했다. 헬기가 들어올 수 있는 거리는 150 km 반경이다. 기상이 악화하고 고립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다. 마지막에 도착했을 때는 현기증이 나서 누워있었다. 하지만 그린란드 들어가서 70여일을 함께한 개들이다. 좋든 싫든 개들도 대원이다. 행복감도 느끼고 매일 쓰다듬고 먹이를 줬다. 정이 들었던 놈들을 어떻게 잡아먹을 수 있겠나. 다행히도 일단 이성이 체력을 버텨줬다. 더 극한상황이었다면 알 수 없다."
_ 앞으로 탐험 계획은.
"내년 2월 베링해 횡단계획이 있다. 예전부터 계획했는데 비용 문제 때문에 아직 못했다. 내년에는 꼭 갈 생각이다."
■ 남극·북극·에베레스트·그린란드 모두 탐험 '세계 유일'
▦홍성택 대장은
1966년 경북 구미시에서 태어나 용인대 유도학과를 졸업한 뒤 탐험가의 길로 들어섰다. 파고다외국어학원에서 17년간 일하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1992년에 구 소련 칸텡그라(7,110m) 등정에 이어 1993년 남극점에 도달했다. 1995년에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 2002년 히말라야 푸모리동벽(7,117m)을 등정했고, 2005년에는 북극점에 도달했다. 그는 남극, 북극, 에베레스트에 이어 그린란드를 탐험한 세계에서 유일한 인물이 됐다.
조재우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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