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뇌를 써라/강동화 지음/위즈덤하우스 발행·352쪽·1만5,000원
화가 고흐는 1888년부터 뇌전증(간질)을 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그림은 역동적이고 격정적으로 변모했다.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은 이듬해인 1889년 탄생했다. 차이코프스키, 헤밍웨이, 버지니아 울프는 모두 조울증 환자였다. 이들에게 뇌 질환은 불행만이 아니었다. 타고난 실력과 함께 관습에 얽매이지 않게 하는 창조성의 선물이었다.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울산의대 신경과 부교수가 쓴 <나쁜 뇌를 써라> 는 나쁜 뇌를 이렇게 정의한다. 감정적인 뇌, 망각하는 뇌, 산만한 뇌, 합리화하는 뇌, 왜곡하는 뇌…. 쓸모 없는 뇌의 총 집합이다. 그럼 착한 뇌는? 집중하는 뇌, 의심하는 뇌, 기억하는 뇌다. 그런데 저자는 나쁜 뇌가 부정적으로 보여도 착한 뇌에는 없는 매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마치 나쁜 남자처럼. 나쁜>
먼저 감정적인 뇌를 보자.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 컴퓨터처럼 이성적인 행동만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감정의 뇌라 불리는 안와전두엽을 다친 사람은 결정을 내리는데 수 시간을 허비한다. 각 선택지의 장단점을 나열하며 쉽사리 하나를 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감정이 없을 때 합리적인 행동이 불가능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망각하는 뇌는 어떤가. 기억이 나지 않아 고생한 경험은 누구나 있다. 부정적인 뜻의 '망각증'은 어울려도 '망각력(잊는 힘)'이란 말은 도무지 어색하다. 하지만 뇌의 관점에서 보면 망각은 기억의 저장소를 충분히 확보하려는 행위다. 망각은 중요한 일을 기억하려고 덜 중요한 일을 잊는 긍정적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예술과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두루 천재성을 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주의력결핍장애(ADD)를 앓았다. 산만한 뇌를 가진 그가 평생 완성한 그림은 17점에 그친다. 사소한 것에도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집중할 수 없었던 거라고 책은 말한다. 주의력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주의력 '과잉'이라는 해석이다. ADD 환자는 때때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이들을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고 보며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앗는 사회인식이 문제라고 말한다.
결론은 나쁜 뇌의 재발견이다. 균형 잡힌 판단을 위해선 착한 뇌와 나쁜 뇌 모두가 필요하다. 책 속에는 흥미로운 뇌 실험과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어 따분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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