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긴 하지만 보상금이 죽은 아이의 빈자리를 대신해 주진 못합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주민들이 거대 제약회사를 상대로 15년간 벌여온 싸움에서 승리했다. 영국 BBC방송은 세계 최대 제약회사 화이자가 나이지리아에서 벌인 임상시험으로 목숨을 잃은 어린이 4명의 가족에게 각각 17만5,000달러(1억8,900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했다고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임상시험이 있은 지 15년 만이다.
화이자는 1996년 나이지리아 북부 카노지역에서 수백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새로 개발한 뇌수막염 항생제 트로반의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부모들에게는 시험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시험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병원윤리위원회의 허가서는 위조했다.
그러나 임상시험이 실패하며 트로반을 복용한 5명, 대조 실험을 위해 이전 항생제를 먹은 6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ㆍ청각 장애와 뇌 손상 피해를 입은 아이들도 여럿 나왔다. 가족들은 화이자가 성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질병을 앓는 아이들에게 적정 항생제 복용량보다 적은 양을 처방하기까지 했다며 분노했다.
2000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이 사건이 알려지자 세계 최대 제약회사가 아프리카 주민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셌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가족들을 대신해 화이자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민ㆍ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화이자는 200명을 대상으로 시험했다고 주장했지만, 소송에 참여한 가족은 547명에 달했다.
소송에 질 경우 60억달러의 천문학적 배상금을 물어야 했던 화이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정 밖에서 방어에 나섰다.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나이지리아 주재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에 따르면, 화이자는 당시 법무부 장관의 뒷조사를 해 나이지리아 정부가 소송을 취하하도록 압박했고, 나중에는 야쿠부 고원 전 대통령까지 동원해 배상금 요구액을 낮추도록 압력을 넣었다. 결국 나이지리아는 2009년 화이자와 처음 요구액에 턱없이 적은 7,500만달러에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족들이 추가 협상을 통해 배상을 받기까지 다시 2년이 걸렌 셈이다.
보상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임상시험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나이지리아가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소아마비 창궐지인데도, 사건 이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맞히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서구가 소아마비 백신에 에이즈 바이러스를 넣었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서구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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