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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11년째 실종 아들 찾는 최명규씨…실종 그날 밤 다가온 빨간 승용차 "번호판만 봤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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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사람/ 11년째 실종 아들 찾는 최명규씨…실종 그날 밤 다가온 빨간 승용차 "번호판만 봤더라면…"

입력
2011.08.1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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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7일 최명규(44)씨에게 지옥이 시작됐다. 평범했던 삶은 순식간에 숨쉬기조차 고통스러운 나날로 변했다. 최씨의 큰 아들 진호(당시 4세)가 이날 낮 12시30분께 사라졌다.

햇살이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최씨는 경기 안산시 상록구 사동의 한 다가구주택 2층에 살았다. 실종 직전 진호는 1층 현관문 옆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최씨 부인은 2층 창문을 통해 수시로 확인했지만 잠깐 안 본 10분 사이 진호가 없어졌다. 동네의 한 할머니는 "고등학생인지, 성인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한 명이 진호와 같이 있었다. 친척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가족들과 30여분간 진호를 찾던 최씨는 파출소로 달려갔다. 경찰은 납치나 실종이 아닌 가출인신고로 접수했고, 당연히 초동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동사무소로 찾아가 애원한 방송요청도 실종된 지 6시간이나 지난 저녁에서야 이뤄졌다. 주택가에 폐쇄회로TV가 없던 시절. 그렇게 진호는 최씨 곁을 떠나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다.

9일 오전 그 집 앞에서 최씨를 만났다. 지금은 걸어서 5분 거리로 이사했지만 그는 2~3일에 한번 꼴로 이곳을 서성인다. 만에 하나 놓쳤을 지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진호가 실종된 골목은 11년이 지났어도 변한 게 없었다. 최씨가 살던 다가구주택도, 부인이 진호를 내려다봤던 창문도, 집 옆 나지막한 언덕도 그대로였다. 변한 건 최씨 뿐이다.

그 동안 비슷한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갔다. 전국 방방곡곡을 미친 사람처럼 헤매기를 3년. 유통대리점을 하며 모은 돈은 금세 바닥 났다. 이후 건축 일을 하거나 이삿짐을 나르며 지방을 전전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앵벌이 집단에도 침투했다.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점도 200번 이상 쳤다. 이러는 동안 아내와 헤어졌다. 지금은 중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과 함께 산다. 둘째는 그가 삶을 이어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최씨는 "장기미아 부모 중 90%는 갈라 선다"며 "누구든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고통이었을까. 그는 "세상이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버텨내기도 힘겨운데 주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심지어 "왜 아이를 잃어버리느냐고" 손가락질을 하는 이도 있었다. 최씨는 "이제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지도 않는다"며 "애타게 돌려도 밟거나 구겨서 버리고, 그 위에 침을 뱉는다"고 한숨을 지었다. 3년 전 미아 찾기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 안산시실종가족지원센터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다. 살점이 도려져 나가는 고통을 다른 부모들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지난 5월 23~24일 최씨의 예전 집에서 1㎞ 떨어진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생태습지공원에서 양수기 25대를 동원해 저수지 물을 빼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진호의 예상 이동 경로 중 유독 의심이 갔던 곳이다. 환경파괴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학교측이 결국은 최씨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였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수위를 1m 정도 낮춘 뒤 경찰이 뛰어들었지만 진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최씨는 "물을 완전히 빼지 못해 완전한 수색은 아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감사한다"며 "내 복이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허탈해했다.

최씨는 11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진호는 납치됐다"고 말한다. 가출할 나이도 아니고, 나갈 이유도 없었다. 여기에 실종 당일 미심쩍은 일까지 있었다. 그날 밤 최씨는 집 근처 차 안에서, 작은 형은 집 옆 언덕 위에서 잠복을 했다. 자정 무렵 시동은 켰지만 라이트를 끈 채 서 있는 차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최씨가 차를 몰고 다가가자 그 차는 골목길을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이어 한참을 가더니 멈춰서고, 최씨가 따라붙자 도망가기를 네댓 번 하고는 속도를 높여 사라졌다. 가로등이 없던 골목길에서 차 번호판을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최씨는 "빨간색 국산 준중형차였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가슴을 쳤다.

최씨는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고 가슴에 쌓인 한을 털어놨다. 유원지나 놀이공원에서 잃어버렸다면 부모 책임이 크지만 놀이터나 학교, 동네 골목에서의 실종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종아동 부모를 참여시키는 국가차원의 장기미아 전담기구 설치를 바라고 있다. 그는 "지금도 장기미아는 계속 생기는데 국가는 출산장려만 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마음 놓고 아이 키울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최씨는 안산에 있는 지인의 가게에서 인테리어 일을 돕고 있다. 돈이 좀 모이면 다시 아들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아픈 기억의 장소지만 진호의 생사를 확인하기 전까지 안산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돌아올 진호와의 마지막 끈이 남아 있는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진호는 분명히 살아 있다. 부디 부유한 집에서 사랑 받으며 자라고 있기를…."

안산=글ㆍ사진 김창훈기자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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