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약값이 평균 17%, 최대 26.5%까지 내려갈 전망이다. 연간 국민 약값 부담이 2조1,000억원 줄어드는 효과다. 예컨대, 간염치료제인 헵세라정(10㎎)을 먹어야 하는 환자를 기준으로 하면 지금은 1년 약값으로 63만2,000원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약값이 계획대로 인하되면 42만3,000원으로 떨어져 20만9,000원을 절감하게 된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12일 약값 인하를 뼈대로 한 ‘약가제도 개편 및 제약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을 목표로 관련 규정 정비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약값 인하 대상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의약품 1만4,410개 중 8,776개로 61% 정도다.
우선 현재의 계단식 약가 제도가 폐지된다. 계단식 약가는 특허 만료 이후 제네릭(복제약)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건강보험 등재 순서에 따라 약값에 차등을 두는 방식이다. 빨리 등재할수록 오리지널(원조약) 약값에 가깝게 받도록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유지되면서 되레 제약사들이 신약이나 기술개발에 힘쓰기 보다는 다국적 메이저 제약사들의 약을 복제해서 파는 ‘오퍼상’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계단식 약가제도 대신, 동일 성분의 의약품에 대해서는 보험 상한가(건보 부담가)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동일성분 동일약가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특허가 만료된 약(오리지널)은 만료 후 1년까지 원래 약값의 80%였던 보험 상한가를 70%로, 복제약은 68%에서 59.5%로 내려 제약사들의 약값 인하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더불어 특허 만료 1년이 지나면서는 보험 상한가를 53.55%로 일괄적으로 내릴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이미 등재됐거나 새 제도 시행 전인 올해 말까지 등재되는 약은 내년 3월부터 상한가격이 53.55%로 일괄 인하된다. 이렇게 되면 1만4,000여개 건강보험 등재 약 가운데 8,776개 품목의 가격이 지금보다 평균 17% 인하된다. 또 국민의 약값 부담액 6,000억원, 건강보험지출 1조5,000억원이 절감되고, 전체 건강보험 급여의 30% 수준인 약품비 비중이 24%로 낮아질 것으로 복지부는 추산했다.
정부가 약값 인하방안을 시행하는 배경에는 국민의 약값 부담이 크다는 점도 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건강보험 재정악화가 자리잡고 있다. 진 장관은 “현재 국민의 의료비 지출 중 약품비 비중이 2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6배 수준으로 약값이 비싼 데다, 이대로라면 건보 재정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갈 우려가 있어 제도를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노리는 부수적인 효과는 제약업계의 체질 변화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제약사는 265곳이나 연간 생산규모가 1,000억원을 넘는 곳은 35개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제약업계의 판매관리비(매출액 중 35.6%)는 제조업계(11.16%)의 3배 이상이다.
진 장관은 “약제비에 낭비가 심하다 보니 너무 많은 제약사가 난립하면서 산업의 영세성이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여기에 리베이트 등 부당경쟁까지 더해지면서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약가 인하안에 제약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제약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제약산업의 생존과 제약인의 생업 유지를 위해 법적 대응 등 모든 방법을 불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약업계 관계자 100여명은 이날 서울 방배동 제약회관 앞에서 정부의 약가 인하 중단을 요구하는 피켓시위를 벌였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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