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깨우친다고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한다. 그만큼 성숙한 마음과 생각으로 사려 깊은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6일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1961년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시장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이 단체를 만들었고 어느덧 반세기가 흘렀다. 전경련의 역사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역사이고, 이는 곧 산업화와 경제발전의 역사이기도 하다. 권위주의 시절 '정경유착의 창구'역할을 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있었지만, 그건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야합했던 시대의 어두웠던 단면일 뿐 전경련 자체를 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하지만 전경련의 현 주소는 지천명을 논하기 민망할 정도다. 반(反)대기업 정서가 강한 상황이다 보니, 국민들이나 중소기업들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는 건 그렇다손 치자. 회원사인 대기업들조차 "전경련이 왜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대기업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짐만 되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반기업 입법을 막겠다고 로비 대상 정치인 명단을 만들고 대기업 별로 할당한 사실이 드러난 게 그 대표적인 예다.
A기업 임원은 "전경련도 오래되다 보니 관료화된 것이 문제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입장을 대표하기 위해 전경련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전경련 자체의 존재를 위해 대기업을 대변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늘 현안대응은 늑장일 수 밖에 없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해묵은 논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B기업 임원도 "대기업들이 전경련에 바라는 건 무작정 대기업 논리만 늘어놓으라는 게 아니다. 똑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대기업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필요한데 전경련은 귀를 막은 채 아무런 소통노력도 전략도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대기업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대기업에 대한 반감만 부추기는 격"이라고 말했다.
50세부터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전경련도 50주년을 맞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 왜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대기업들로부터도 눈총을 받게 됐는지, 꼼꼼히 진단하고 그에 걸맞은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수뇌부의 인적 쇄신도 마다해선 안 된다. 그게 허창수 회장, 10여년 만에 수장이 된 힘있는 대그룹 오너회장이 해야 할 일이다.
최연진 산업부 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