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재순씨,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나/ "어머니의 뜻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됐으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재순씨, 평생 모은 돈 기부하고 떠나/ "어머니의 뜻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됐으면…"

입력
2011.08.11 12:14
0 0

"어머니는 당신이 죽기 전까지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기부하셨다는 사실은 3남 2년 중 저만 알고 있다가 다들 어머니의 장례식에 와서야 알았죠."

평생 모은 10억원을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에 기부하고 지난달 세상을 떠난 한재순(세례명 미카엘라ㆍ항년 83세) 할머니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둘째 딸 홍기명(55)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선 고기 한 근도 사 드시지 않았던 분"이라며 울먹였다.

한 할머니가 홍씨와 함께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 10일. 할머니는 정진석 추기경에게 1억원짜리 수표 9장을 건네며 말했다. "저는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좋은 데 써주세요." '옹기장학회'라고 적힌 쪽지를 내밀며 "이곳에도 써달라"고 부탁했다. 옹기장학회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장학재단이다. 그게 다였다. 닷새 뒤 할머니는 한 수도원에 또 1억원을 기부했다.

홍씨는 "부모님은 쌀 장사, 야채 장사를 하며 다섯 남매를 키우셨고 내의와 양말은 거의 다 기워 입는 등 정말 근검 절약하며 사셨다"며 "그렇게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한 뒤 통장에 남은 돈이 딱 280만원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당신이 스무 살 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당시 너무 가난해서 약 한 재 써보지 못했다며 매번 가슴을 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평화방송에 나온 추기경님을 보고는 친정아버지를 뵙는 것 같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러고는 결심하셨대요. 절약해 돈을 모아서 죽기 전에 갖다 드리고 가야겠다고."

전화선에 실려오는 홍씨의 목소리가 차츰 작아졌다. 흐느낌도 전해졌다. "어머니는 2003년 세례 받고 성당에 하루도 안 빠지고 다니셨어요. 나중에는 다리가 아파서 걸어서 10분 거리를 1시간이 걸려 가셨죠. 어머니가 기부한 10억원은 당신의 삶이자 전부였어요."

할머니는 지난달 갑자기 세상을 떴다. 남편 홍용희(세례명 비오ㆍ향년 82세)씨가 지난달 26일 지병으로 별세한 데 이어 비교적 건강했던 할머니도 이틀 뒤인 28일 뇌출혈로 남편의 뒤를 따르듯 세상을 등졌다. 장례미사는 지난달 30일 서울 대치동 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정 추기경은 추도사에서 "미카엘라 자매님은 마치 친정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리는 마음으로 저에게 교회의 사업과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써달라며 자신의 전 재산을 교구에 기부하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홍씨는 "어머니의 뜻이 세상에 빛이 됐으면 한다"며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