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기준금리를 또다시 동결한 것은 현 경제상황이 섣불리 거시정책을 운용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다는 진단에 다름 아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점증하는 물가상승 압력을 거론해 이달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크게 열어 뒀다. 하지만 미국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의 격동, 미국 경기의 더블딥 우려, 유럽 재정위기 확산 가능성 등 잇단 외부 악재가 자연스런 금리 인상의 여지를 또 한번 휩쓸어 가버렸다.
김중수 한은 총재 역시 통화정책의 딜레마를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김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회견에서 "원칙적으로 금리 정상화 방향은 변화가 없다"며 "건실한 성장을 기조로 하는 중립금리 수준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연간 물가상승률 목표인 4.0%를 지키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하지만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선 주요국 경기 둔화 지속 가능성, 유럽 국가채무 문제 확산, 국제 금융시장 불안 등을 위험요인으로 꼽은 뒤 "이로 인해 (경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금리 인상에 대한 부담을 내비쳤다.
사실 우리 경제의 최근 상황은 가파른 물가 상승 속에서 내외부적 경기둔화의 위험이 상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반되는 상황) 조짐이 없지 않다. 물가를 잡자고 금리를 올릴라치면 경기둔화 우려가 걸리고, 환율 하락을 용인해 물가를 안정시키려 해도 수출 위축 가능성 때문에 한계에 봉착해 어느 한 방향의 거시정책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이기 힘들다.
거시정책 운용이 어렵다면 당분간 현장에 밀착된 유연하고 적극적인 미시정책을 가동하면서 글로벌 경제의 흐름을 관망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쁘게 보면 임기응변이지만, 비상상황에 준한다고 볼 수 있는 최근 경제상황에선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일 수 있다. 우리는 정부가 다소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기름값과 외식비, 일부 공산품 등에 대한 최근의 이례적인 가격 관리책이나, 금융사 대출 억제방안 같은 미시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굴ㆍ시행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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