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경력 24년 된 베테랑 배우의 얼굴에 긴장이 서렸다. 11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우어파우스트(Urfaust)' 간담회에 주인공 자격으로 나온 정보석(49)은 마치 제작발표회에 처음 온 신인처럼 "나를 찾아가고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우어파우스트'는 독일 대문호 괴테가 '파우스트 1부'보다 30년 이상 앞서 20대 때인 1775년 발표한 '파우스트'의 초고다. 9월 3일~10월 3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파우스트'에 비해 이야기 구조가 단순하고 각 캐릭터의 인간적 면모가 강조된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바보 연기를 했던 정보석은"처음 파우스트 역할을 제안 받았을 때 두려운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내가 이런 큰 인물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캐릭터도, 나의 내공도 초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연습실에 갔죠. 그런데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 초인의 반열에 올라보겠다는 제 의지와 달리 연출가가 생각하는 파우스트는 평범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더군요."
'우어파우스트'는 명동예술극장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해외 연출가를 초청, 제작하는 연극이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독일의 젊은 거장으로 주목 받고 있는 다비드 뵈쉬(33)가 연출한다. 그는 배우의 상상력을 극에 적극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연출가다. 정보석은 그런 뵈쉬와의 만남에 대해 "끊임없이 내 한계를 경험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게으름 부릴 시간이 없는 작품입니다. 매일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면서 또 흥분되죠.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일상을 대본을 보며 상상하는 일에 투자하고 있어요."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이번 공연을 통해 많은 걸 얻게 되리라는 희망에 차 있다. 실제 중년 남성으로서 느끼는 고민이 '평범한 인간 파우스트'와 맞물려 있어서다. 그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지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아는 게 더 없어지는 것 같은 중년의 자기회의에 빠지곤 한다"며 "그에 대한 해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파우스트 역에 푹 빠진 그는 요즘 하루 걸러 배역과 중년의 삶에 대한 고민을 트위터에 남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이 오히려 즐겁다고 했다. "연극이 끝나면 또 다시 허무감에 빠질지 모르지만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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