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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네요. 며느리가 도통 아이들 돌볼 생각을 안 해요. 아들네 갈 때마다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 게임을 하고 있는 거에요. 전에 한 집에 같이 살 때도 그랬거든요. 분가한 뒤론 따로 아이 봐줄 사람도 없는데 게임을 손에서 놓질 않네요. 두 돌 갓 지난 손녀는 엄마가 놀아주지 않고 TV만 틀어줘 그런지 말도 안 늘고 불러도 대답도 잘 안 해요. 매번 빈 자장면 그릇이 있는 걸 보면 애들 밥이나 해 먹이는지 모르겠어요. 며느리는 자신이 얼마나 게임을 많이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아요. 20대 후반인데, 다 큰 어른이, 게다가 애기 엄마가 저렇게 게임에 빠져 있다니요. 50대 후반 주부(서울 관악구 신림동)
암 같은 병은 조직을 검사해 맞다 아니다를 확실히 가려낼 수 있지만 중독이나 우울, 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는 사실 객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아요. 여러 가지 관련 상황이나 증거들을 종합해봐야죠.
최근 들어 중독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로 여기기 시작한 항목이 바로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불만을 표현하는가'에요. 일반적으로 중독이 심할수록 자신은 중독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정도가 강해지죠. 이럴 경우 가까운 주위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 더 객관적일 수 있어요. 또다른 근거로 '결과가 나쁜데도 계속하는가'도 있어요. 손녀의 변화가 눈에 띈다는 사실이 나쁜 결과로 볼 수 있겠죠.
타인의 입장에서 설명한 내용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며느리가 게임 중독일 가능성이 없지 않네요. 어린이보다 어른의 중독은 더 고치기 어려워요. 아무리 시어머니라도 제발 게임 좀 하지 말란 얘기를 반복하는 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에요. 어른의 말이 중독을 막는 효과를 내는 건 보통 중학교 이전까지일 뿐이니까요.
며느리가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야죠. 재미있어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같은 표면적인 이유 말고 좀더 근본적인 이유를 말이에요. 가족끼리 대화를 하든 함께 상담을 받든 중요한 건 '넌 문제가 있어'라며 중독에 대해서부터 이야길 시작하면 며느리를 돕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며느리가 자신의 상황이나 심정을 이야기하고 식구들이 그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제일 먼저에요.
신성만 한동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국상담심리학회 중독 상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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