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부모님과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한 회사원 안상은(28)씨는 설레는 마음보다 걱정이 앞선다. 열흘 넘게 집을 비우다 보니 도둑의 표적이 될까 봐서다.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주택이라 경비원의 관리는 꿈도 못 꾸는 처지. 급한 대로 신문보급소에 연락해 휴가 기간 신문 배달을 취소시키는 게 고작이다.
안씨처럼 장기간 집을 비우는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경찰이 '빈집사전신고제(이하 빈집신고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하는 시민이 드물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이 업무 가중을 이유로 이 제도를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 통에 접수 건수가 올 들어 5건에도 못 미치는 경찰서가 수두룩하다.
빈집신고제는 휴가나 명절 연휴 등 장기간 집을 비울 때 가까운 지구대에 신고하면 경찰이 해당 주택에 대한 순찰 활동을 강화해주는 제도. 1998년 처음 도입됐다. 신고가 접수된 주택은 하루에 최소 2번 경찰이 방문해 방범창 확인, 우편물 수거 등 빈집 관리를 맡아준다. 방문 후엔 안전에 이상이 없다는 메시지를 휴대전화 문자로도 남겨준다.
10일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현재까지 서울 시내 31개 경찰서에 접수된 빈집신고제는 총 375건. 서초서가 83건으로 가장 많았고 양천(46건) 중랑(24건) 광진(21건) 서부(20건) 순이었다. 은평 강서 등도 10건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경찰서는 접수 실적이 2, 3건에 불과했다. 특히 빌라나 아파트 등 인구가 밀집한 강남 노원 관악 구로서는 휴가철이 집중된 7월부터 현재까지 신고 건수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처럼 신고 건수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제도 홍보를 일선 경찰서 자율에 맡겨두기 때문.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2008년부터 제도 운영을 지구대별로 자율에 맡겼기 때문에 홍보 활동 역시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보에 적극적인 경찰서는 플랙카드를 내걸거나 아파트 반상회를 찾아가 자체 제작한 홍보 부채까지 나눠주기도 했다.
물론 신고 건수가 적은 경찰서도 저마다 할말은 있다. '부유층은 사설 경비업체에 맡긴다'(강남) '계속된 호우로 휴가 가는 시민들이 줄었다'(노원) '쪽방촌 등 저소득층 거주자 밀집지역이라 휴가를 잘 떠나지 않는다'(구로)는 식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찰서들은 먼저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A지구대 관계자는 "신고가 접수된 주택이 10곳만 넘어도 순찰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며 "순찰활동에 인력이 많이 투입되면 긴급상황 시 업무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빈집신고제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24시간 감시체제가 아닌 이상 100% 범죄 예방을 장담하기 어렵고 실제 도둑이 들었을 경우 경찰이 고스란히 책임을 떠 안아야 하기 때문.
빈집신고제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안씨는 "제도 자체를 이용할지 말지는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좋은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생각은 않고 당장 편하자고 제도를 잘 알리지 않는 경찰을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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