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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 곳] 김훈의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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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작, 그 곳] 김훈의 '남한산성'

입력
2011.08.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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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욕의 현장에서 그는 말했다, '옳은 말'은 여전히 넘쳐난다고…

김훈에게 남한산성은 치욕을 치욕으로서 감당하는 자리다. 주전파(主戰派)와 주화파(主和派)간 기름진 혀들의 공전(空戰), 그 항전 없는 항전 끝에 임금은 칸에게 삼배를 올렸고 칸의 오줌을 받았다. 임금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찧었다.

이 치욕에 대해 '치욕을 감당하는 노예가 거꾸로 주인이 된다'는 헤겔식 낙관이나, '치욕이여, 모락모락 김 나는 한 그릇 쌀밥이여'(이성복의 시 '치욕의 끝' 중)라는 시적 도약이나, '치욕을 들추는 것은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란 어느 우파의 객쩍은 자기방어도 김훈 앞에선 요설일 뿐이다.

치욕은 치욕이고 노예는 노예고 비루한 것은 비루한 것이다. 당면한 세계의 어둠부터 또렷이 말하는 것, 이 기자적 실증성과 직필 의식이 김훈 미문(美文)의 아이러니한 토양이다. 김훈의 장편 곳곳에 놓인 표지석은 그래서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는 스트레이트 문장이다.

치욕이 거쳐간 통로, 남한산성 서문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은 누추했다. 통로 높이는 어른 키 조금 넘고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도 좁다. 김훈은 "개구멍 같다"고 했다. 1637년 1월 30일(음력) 이곳을 지난 인조의 굴욕적 행차를 목격했을, 누렇게 변색된 성곽의 돌들은 처연했다.

소설 은 이 서문에서 똬리를 틀었다. 임금은 죄인이었던 까닭에 성의 정문인 남문으로 나오지 못하고 암문(暗門)인 서문으로 출성했다. 좁은 통로였기에 말을 탈 수도, 가마에 앉을 수도 없었다. 해발 550m의 성문을 나오면 시야는 탁 트여 적이 도사렸던 삼전도(송파구 삼정동에 있었던 한강 나루)를 비롯해 한강 너머 강북과 북한산 등이 훤하게 보인다. 그렇기에 내려가는 길은 어지럽게 가팔랐다. "여기서 제가 살던 대궐이 아득히 보였을 테니 환장했겠지요. 눈이 녹지 않은 길을 내려가면서 자꾸 꼬꾸라지기도 했다는 거에요." 더 말하지 않았으나, 다음 문장은'참혹하여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118쪽)였지 않을까.

김훈은 그 치욕이 응어리진 서문을 보며 "꼭 써야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각성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도 불러냈다.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찾은 남한산성에서 교사가 이 문에 얽힌 역사를 설명했을 때 어린 김훈은 우리 민족을 짓밟은 거대한 세계에 대한 공포로 몸서리쳤다고 했다.

성문에서 내려왔을 때 그는 이 공포를 다시 설명했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우리는 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자랐거든. 페니실린 주사라고 알아요? 지금은 약 축에도 끼지 못하지만, 그거 한 대를 못 맞아서 죽은 애들이 허다했어요. 그런 거에 의지해서 우리가 살았던 거죠." 압도적 세계 앞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김훈 특유의 냉담한 응시, '세상은 되어지는 대로 되어갈 수밖에 없을 것'(16쪽)이라는 소설 에 드리운 음울한 음조는 이 원체험에서 비롯됐을 터다.

현란한, 그러나 무력한 말들의 풍경

2005년부터 구상해 2007년 4월 출간한 은 첫 달에만 10만부 이상이 팔리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그 해 30만부 가량이 나갔고, 지금까지 60만부 이상이 팔린 2000년대 한국 문학이 배출한 대표적 작품이다.

를 비롯해 읽기 쉽지 않은, 스펙터클한 이야기도 없는 김훈의 역사소설이 대중을 사로잡은 것은 역사의 각질을 벗기고 지금, 여기 인간들의 실존적 문제를 끌어 내기 때문이다. 김훈의 문장은 '먹고 살기 위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치욕적인가, 그 치욕을 또한 어떻게 견딜 것이냐'고 차갑게 물었다.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에 갖다 붙여 "성에 갇혀선 안 된다. 개방해야 한다"거나 "그래서 주화파가 옳았다는 소리냐"는 웅성거림은 짧은 막간극이었다.

소설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도피한 47일간의 기록이다. 무대는 둘레 8km의 성벽에 싸인 2.3㎢의 자족한 분지 안으로, 그 속에서 들끓는 말들의 풍경이 펼쳐진다.

싸워야만 화친의 길도 열리니 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란 예조판서 김상헌의 주전론, 굴욕을 감수해야 왕조를 보존할 수 있으니 출성(出城)이 곧 수성(守城)이란 이조판서 최명길의 주화론 등 성내 지식인의 현란한 변증의 언설은, 그러나 성 밖에 포진한 청의 17만 대군이 이끄는 말(馬)먼지 앞에선 한갓 말(言)먼지일 뿐이다. 충(忠)이 역(逆)인지, 역(逆)이 충(忠)인지 혼란스런 요설적 풍경 한편으로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주려서 굶어죽고, 굶어죽은 말을 삶아서 군병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이 성첩에서 얼어죽는"(93쪽) 무참한 육체적 현실이 그려진다.

그 휘황한 언어와 비장한 이념은 그래서 지극히 진중하지만, 지극히 희극적이다. 고작 밴댕이젓 한 독을 나눌 때도 예법에 따라 후궁과 부마까지 챙겨야 하는지, 당하까지 나눠줘야 하는지, 토막쳐서 나눠줄지를 임금에게 묻는 무력한 신료들은 행궁으로 쉴새 없이 떨어지는 포탄을 보며 그 포탄의 유래는 잘도 왼다. 그들 앞에서 임금은 말한다. '경들이 해박하구나.'(330쪽)

이런 희화화에 대해 김훈은 "진짜 한심했죠. 성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어요. 당시 실록을 보면 정말 한심해요. 임금은 뭐 먹었다, 이런 잡소리만 써 놨으니까. "이는 지식인들의 거대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김훈의 오래된 경멸의 연장선이다.

'민중적 생명력'이냐 '먹고사니즘'이냐

혀만 요란할 뿐,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인간 군상의 파노라마 속에서 그래도 민중적 생명력의 긍정성이 희미하지만 힘겹게 그려진다는 점은 주목되는 대목이다. 대장장이 서날쇠를 통해 스스로 살아가는 백성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허무주의적 영웅을 그린 전작 와 다른 의 특징이다. 서날쇠는 "포위가 풀려야 저도 대장간을 굴려서 먹고 살 수 있다"며 청군의 포위망을 뚫고 조정의 격서를 지방에 전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김훈은 "당시 성 안에 살던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성 안에 원래 살던 백성들은 임금을 무지 욕했을 거에요. 저 못난 임금이 들어와서 우리도 다 죽게 생겼다고. 온갖 쌍소리를 했을 텐데, 그런 자료는 남아 있지 않아 구할 수 없었어요. 그래도 당시 향토 자료가 도움이 되었어요."

남한산성 도립공원 내 복원 공사가 진행중인 행궁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도로 로터리가 소설의 또 다른 주요 무대다. 이 곳에 모인 백성들은 지근거리에서 권력의 중심과 마주쳤고, 막판에는 "싸우기를 주장한 신하가 나가서 싸우라"며 사보타주를 벌인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대한 경멸과 먹고 사는 현실에 대한 김훈의 강조는 끊임없는 비평적 논란의 대상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 대해 '먹고사니즘'이란 알리바이를, 혹은 '정치적 허무주의'란 또 다른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문학평론가 김영찬씨는 "세상을 어찌할 수 없다는 불가피의 감각과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안쓰러운 긍정이 포스트 IMF 시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

더 궁금한 것은 그가 언어의 허망함을 얘기하면서도 언어를 다루는, 그것도 극도로 미학적인 문장을 구사하는 소설가라는 점이다. 이 이율배반에 대한 답변은 역시 김훈다웠다. "난 소설을 별 대수로운 일로 생각 안 해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노동 중의 하나죠. 물론 내가 영성을 바쳐야 할, 나에겐 중요한 노동이긴 하지만 그게 다른 노동에 비해 숭고하거나 위대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난 그런 바보가 아니라고."

언어의 한계를 냉정히 인정하는 이런 태도는 그의 소설과 에세이 전반에 두루 걸쳐 있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다" 등 시종일관해온 그의 언어관은 실은 정의와 윤리 같은 가치판단을 다투는 말들에 대한 불신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그의 고단한 사변들은 결국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것들은 말할 수 없다'로 요약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김훈은 비트겐슈타인을 닮았다. 의 마지막 문장은'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다. 윤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단지 보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요지다. 역설적인 것은 이 논리실증주의의 성서가 실은 대단히 윤리적인 저서라는 점이다. 언어에 엄격한 한계를 짓고자 한 것이 바로 말들의 요지경으로 얼룩지는 윤리를 침묵으로서 되살리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인터뷰 말미, 남루한 현실에 대해 김훈도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다. 그가 언급한 것은 비정규직 문제였다. "신분을 만들어서 차별하고 제도화하는 이런 게 잘못 됐다는 것은 복잡한 이론 필요없이 딱 보면 알잖아요. 사농공상 만들어 차별한 것과 똑 같은 짓거리지. 하지만 우리가 이 모양이 된 게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잖아요. 옳은 말은 매일매일 넘쳐나요. 근데, 말로서 해결이 안되잖아요. 아 참, 답답해."

차가한 문장이 내포한 뜨거운 윤리성

뜻밖에도 김훈은 소설 에서 가장 신뢰하는 이로, 말미에 등장하는 젊은 당하관 윤집과 오달제를 꼽았다. 항복의 대가로 청에 포로로 잡혀가 죽은 학사(學士)다. 김훈은 "현실에 책임을 지는 대단한 실천적 지식인으로 그들을 통해 조선의 정통성이 지켜질 수 있었다"며 "투항인 동시에 저항이었던 그들의 행동이 주전파와 주화파를 통합한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성내 민촌에서 책만 읽다가 포로를 자청한 것으로 그려?뿐 큰 의미 부여 없이 짧게 지나간다. 그들의 윤리성 역시 말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김훈은 다만 치욕을 치욕으로,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비루함을 비루함으로 냉정히 보여줌으로써 실은 이 현실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 것이냐는 매우 뜨거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 셈이었다. 신형철씨는 "때로 가장 차가운 소설이 가장 뜨거운 질문을 품는다"고 말했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누구도 말할 수 없으며 정답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김훈은 다만 그의 글쓰기 노동으로 한 가닥의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연필과 지우개로 글쓰기를 하는 그의 엄지와 검지 끝 손톱이 거의 허물어져 있었다. 그는 "지우개를 계속 쓰다 보니 손톱에 균이 옮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단한 노동의 흔적이 담긴 그 손톱에서 기자는 먹고 살기 위한 그 노동의 윤리성을, 종내 그 노동을 통해 치욕을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차기작은 19세기 배경 언제 나올진 나도 몰라"

경기 안산시 대부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4개월째 머물고 있는 김훈은 다음 작품으로 19세기초의 풍경을 다루는 소설을 집필중이라고 했다. 2009년 에 이어 지난해 에서 현대를 배경으로 했던 그가 다시 자신의 특장인 역사 소설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19세기초 서양의 근대를 받아들이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다룬다"며 "일본이 서양 문물을 급속히 받아들이고 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한심했는지를 생각해보라"고만 언급했다. 그는 그러나"어렵다. 나도 뭘 하고 있나 싶다"며 "언제 작품이 나올 지는 모르겠다"며 난산 중임을 토로했다. 책은 출판사 학고재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연재 없이 전작으로 준비중이다. 그는 2009년 를 인터넷에서 연재했을 당시 주변이 소란스러워져 다시는 연재를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 '무사'에 대해 쓰고 싶다고 했으나 이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다. 그는 "세상과 맞대결하는 자들, 몸으로서 대결하는 자의 내면을 쓰고 싶었는데, 쓰고 싶은 걸 모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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