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에서 청과구매를 담당하는 박기범 과장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산지와 서울 본사를 오가며 땀을 흘리고 있다.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 연휴(9월 10~13일)가 딱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긴 장마와 7월 내내 쏟아진 폭우로 과일생육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추석선물 1호나 다름없는 과일확보에 비상이 걸린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무이파'때문에 낙과 피해까지 생긴 상황. 백화점엔 지금 사실상 '과일 수배령'이 내려져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청과 구매담당인 한정훈 대리는 "원래 9월 1일쯤 돼야 홍로 사과와 신고 배가 제대로 된 맛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추석이 너무 빨라 비상이 걸렸다"면서 "이달 24일쯤에는 전 점포에 선물세트를 내놓아야 하므로 20일부터는 산지에서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좋은 과일 수급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사과나 배를 주로 안성, 화성 등 중부 지방에서 공급 받았으나, 물량 확보가 여의치 않아 올해는 개화 시기가 빠른 남부의 나주, 영암 등지와 추가 계약을 했다.
특히 백화점은 마트나 수퍼마켓과 달리 중간이나 작은 크기 과일 선물세트보다는 크고 맛 좋은 최상등품으로 선물세트를 만드는 편이어서 과일 수급에 어려움이 더 크다.
박기범 과장은 "올해 추석이 빠르기 때문에 5, 6월부터 일찌감치 예년보다 더 많은 산지를 확보하는 등 상당한 준비를 했다"면서 "문제는 대과(큰 과일)를 얼마나 확보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배를 수확하면 30% 정도가 대과가 되는데, 올해는 그 비율이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태풍으로 배의 주산지인 나주, 영암은 낙과 피해가 컸다. 한 대리는 "태풍이 불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과가 더 먼저 떨어져서 걱정이 된다"면서 "다만 대과를 잘 키우는 유명 생산자들과 오래 전부터 거래를 해 오고 관계를 돈독하게 해 와서 도움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주말~다음 주중 백화점의 추석 선물세트 예약이 시작되지만 청과류 세트의 가격은 아직 미정이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은 청과선물세트에 대해 '시세 기준'이라고만 표기했고, 현대백화점은 정확한 가격을 표시하는 대신 일정한 범위를 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현대명품청과세트'의 가격은 14만~16만원으로 기재하는 식이다.
백화점들은 이 때문에 올해 청과 선물세트의 컨셉도 바꾸고 있다. 일단 대과가 부족하면 중간 크기 과일로 선물세트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저가 세트 비중을 늘릴 계획. 또 한 가지 과일만으로 구성된 선물세트 대신 수입 과일을 섞어 다채롭게 세트를 구성할 방침이다. 또 사과와 배의 대체 상품인 곶감도 20% 더 많이 준비했다.
신선도가 가장 중요한 상품인 만큼 추석 선물세트 배송도 비상이다. 추석이 빨라져 배송이 집중될 9월 초에 기온이 상당히 높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제철에 나오는 사과나 배는 단단한데 조금 일찍 나오는 종류는 쉽게 물러지는 것도 문제다.
그러다 보니 롯데백화점은 과일 세트는 그날 새벽부터 택시와 밴을 활용해 오전 중에 배송하기로 했고, 신세계백화점은 과일이 꼭 끼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특수 패키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물량확보부터 배송까지 사실상 전쟁수준의 힘겨운 작업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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