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자체가 갈등을 해결하거나 평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음악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평화를 향한 열정을 갖게 해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남북한이 함께 모여 연주하는 날이 오면 무엇보다 행복할 것입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65)은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의 한국 공연을 앞두고 9일 오후 서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음악이 지닌 힘을 이같이 말했다.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유대계인 그가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석학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1999년 만들었다. 서로 적대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 젊은 연주자로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통해 평화를 호소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번 내한공연은 10~1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에 이어 15일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임진각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기꺼이 한국행을 결정했습니다. 상징적 의미로 선택한 장소이지요."
2005년 중동 최대의 화약고인 라말라에서 가졌던 콘서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는 "그 감동이 판문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주 프로그램으로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현대에도 여전히 세계 모든 사람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은 인간적 조건의 상승에 대한 열망이 강했지요. 그의 교향곡은 시간을 뛰어넘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통의 경험을 제공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지요. 18, 19세기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똑같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음악 교육이 좀더 전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음악은 하나의 커다란 문화로 봐야 합니다. 역사, 언어, 철학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연주자는 음악기계가 될 뿐이죠."
이날 기자회견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부인이자 바렌보임_사이드 재단의 공동창립자인 마리암 사이드,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 단원인 이스라엘 출신 기 에시드와 팔레스타인 출신 타임 클리피도 참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연주자가 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에시드와 클리피가 말했다.
"솔직히 서로 감정적으로 솟구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음악은 결국 대화를 하게 합니다. 웨스트 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감정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때로 중동 관계 악화로 절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함께 연주하는 단원들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아요."
마리암 사이드가 동감을 표시했다."대립하던 감정들이 연주하면서 미소로 바뀌는 것을 자주 봤어요. 동의하지 않던 것을 동의하게 하는 지휘자의 엄청난 능력이 놀랍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영상 메시지가 방영됐다. 영상 메시지에서 반 총장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울리는 베토벤의 9번은 전세계에 평화를 향한 인류의 염원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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