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선생님은 갱 출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선생님은 갱 출신

입력
2011.08.09 12:02
0 0

1991년 3월 3일 새벽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를 과속으로 질주하다 체포된 흑인청년 로드니 킹이 백인경관들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는 장면이 주민의 비디오카메라에 찍혔다. 과잉공권력 행사 등 혐의로 기소된 경관들이 1년여 재판 끝에 이듬해 4월 백인 위주로 구성된 배심원단에게서 무죄평결을 받았다. 흑인사회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살인, 약탈, 방화가 도시를 휩쓸었다. LA폭동은 경찰폭행이 뇌관 역할을 했을 뿐, 사실은 오랫동안 미국사회에 내연해온 인종차별과 빈부갈등이 깊숙한 원인이었다. 요즘 영국 런던폭동과 거의 유사한 전개과정이다.

■ 이처럼 흑백갈등으로 시작된 LA폭동은 뜻밖에도 이내 한흑(韓黑)갈등 양상으로 변질됐다. 단 닷새 간의 폭동으로 LA 일원의 한인상점 2,800여 곳이 흑인폭도들의 습격으로 불에 탔다. 한국인상점의 여주인이 물건을 훔치려던 15살 흑인소녀와 다투다 숨지게 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당시 흑인들이 상대하기 버거운 주류 백인사회보다는 힘없고 만만한 아시아계 이민자, 특히 한국인을 분풀이 대상으로 삼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폭동과정에서 사망한 단 한 명의 일본인에 대해 "한국인인 줄 알았다"는 가해흑인의 진술까지 나올 정도였다.

■ 폭동 후 한인들끼리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누군가 난데없이 "한인 갱단을 키우자"고 위험한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난다. 폭도들이 중국, 일본인사회를 건드리지 못한 건 야쿠자나 삼합회같은 거대 범죄조직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논거였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당시만해도 그만큼 한인사회에서만큼은 조직범죄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얘기이기도 했다. 기껏해야 영세 한인업소나 귀찮게 하는 동네 불량배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다 한인사회에서도 총기와 마약이 개입된 본격적 갱단이 발호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 말부터다.

■ 이젠 LA지역 30여 아시아갱단 중 한국계가 40%나 된다는 게 현지경찰의 추정이다. 대개 10대 청소년인 이들에 의한 총격살인도 끊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한때 LA 한인타운에 'Stop the Killing(살인은 그만)!' 캠페인광고까지 걸렸을까. 갱단 출신의 유명어학원장 사건은 충격이지만, 사실 같은 일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매년 100명 넘는 한인 갱이 국내에 유입되고, 이들이 서울 강남 등지의 마약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는 건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오로지 자식교육을 위해 미국 행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겐 이만큼 불안한 일도 없을 터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